몸 속 장기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은 그 길이가 10㎞에 달하는 거대한 파이프다. 파이프가 오래되면 녹이 스는 것처럼, 혈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기름기가 낀다. 혈관 속에 흐르는 혈액에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등이 많아지는 것이 바로 고지혈증이다. 고지혈증을 방치하면 동맥 내층에 이런 지방 성분이 쌓여 죽종(粥腫)이 만들어져 피가 제대로 돌지 않게 된다. 이를 죽상(粥狀)동맥경화증이라고 부른다.
고지혈증은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 ‘죽상동맥경화증 발병’, ‘심혈관 질환 유발’로 이어지는 3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혈관에 ‘나쁜’ 저밀도(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진 채로 방치하면 콜레스테롤이 쌓여 죽상동맥경화증이 생긴다. 그러다 죽종이 파열돼 피떡(혈전)이 붙으면 혈관이 갑자기 좁아져 혈류가 줄어들다 끊겨 심근경색증과 뇌졸중, 협심증 등과 같은 심혈관 질환이 생긴다.
혈관 속에 쌓여가는 콜레스테롤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심혈관 질환의 도화선이지만,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도 별다른 증상이 없고, 당장 치료하지 않아도 크게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이 많이 쌓여 죽상동맥경화증이 생겨도 증상이 많이 악화하기 전에는 환자가 지각하기 어려워 치료를 게을리하기 마련이다. 실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환자 4명 중 1명은 주 1회 이상 약을 거르고, 걱정도 별로 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콜레스테롤 관리를 게을리하면 돌연사를 유발하는 심혈관 질환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상으로 관리하는 것이 죽상동맥경화증을 막고,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첫 단계 치료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치료하면 좀 더 적극적인 치료의지를 기대할 수 있겠다.
정상인이더라도 LDL 콜레스테롤을 160㎎/dL 이하로 관리해 죽상동맥경화증의 진행을 막고 심혈관 질환 위험을 예방해야 한다. 이미 관상동맥질환자나 당뇨병 환자라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려면 LDL 콜레스테롤을 더욱 철저히 조절해야 한다.
환자들은 기름진 음식을 삼가고, 약간의 운동으로 지질(脂質) 수치가 개선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생활요법 개선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계속 높거나, 위험인자를 가졌다면 의사처방에 따라 약물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이미 LDL 콜레스테롤뿐만 아니라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밀도(HDL) 콜레스테롤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죽상동맥경화증까지 늦출 수 있는 치료제가 있는 만큼, 의사처방만 제대로 따른다면 심혈관 질환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콜레스테롤 관리의 끝은 ‘열린 결말’이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환자는 심혈관 질환 발병이라는 무서운 결말과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LDL 콜레스테롤을 적극 관리하면,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에서 벗어나 한결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심혈관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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