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크릿 가든> 이 끝났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주말 밤을 꽁꽁 묶어 두던 그 드라마. '이 엔딩, 이게 최선입니까? 정말 확실해요?' 라는 반문을 던질 만큼 드라마는 행복한 동화로 결말이 났다. 백화점 사장에게 시집가서 세 아들을 낳은 스턴트 배우 출신 여주인공은 원래도 서로가 운명적인 짝임이 밝혀진다. '겨울 밤, 꿈 한번 잘 꾸었다'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파리의 연인> <꽃보다 남자>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가 이렇게 여성 시청자들에게 잘 먹혀 들어갈 때야, 이 땅의 여성들이 은밀하게 꿈 꾸는 판타지가 무엇인지는 새삼 시크릿이 아님은 말해서 무엇하랴. 꽃보다> 파리의> 시크릿>
드라마가 끝나니 같은 방송에서 나오는 다큐물은 흥미롭게도 짝에 관한 것이었다. 열렬히 사랑했는데도, <시크릿 가든> 의 두 사람처럼 사회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는데도 왜 어떤 부부들은 불행해 할까?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결혼 유형과 부부 양태에 어떤 연관이 있음을 제시한다. 시크릿>
그 하나가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는 패밀리형. 이들은 결혼 후 남편과 아내로서 책임만 강조하다 우울해지는 책임형 부부로 돌아서기 쉽다. 반면 조건을 보고 배우자를 찾는 맞춤형은 어차피 정략 결혼인 셈이므로 각자의 라이프를 즐기고 밖으로 돌며 다른 짝을 찾는 보헤미안 형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가장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이며 정서적 교감을 우선시하는 감성형 역시 기대하던 정서가 충족되지 않으면 껍데기만 남는 좀비형으로 변하고 만다.
어허, 시크릿 가든 속 인어공주가 공기방울 세탁기로 대박을 내서 잘 사는 듯 보이지만 왕자와 좀비 부부, 겉으로만 행복한 트로피 부부가 될 수 있다니. 사실 현장에서 부부 치료를 하다 보면 이러한 좀비 부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매 맞는 것을 감추고 사는 부자 집 귀부인, 의사 남편을 두고 결혼 3개월 만에 바람을 핀 전문직 여성, 연하 남편을 포함해 세 아들을 데리고 산다는 주부. 흥미로운 것은 결혼만큼은 자신이 선택한 바로 그 기준이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임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배우자를 맹렬히 비난하게 되고, 조건이 중요해 결혼하면 상대의 조건이 나빠지자마자 깨어지고, 정서가 중요해 결혼하면 변덕스런 정서라는 놈이 삼십육계 도망가니까 실망하게 된다. 결혼은 상대를 선택한'기대'가 자신의 발목을 부여잡는 비밀의 화원이다.
자.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찌 보면 짝을 선택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내 욕망의 포기가 아닐까. 짝을 선택한 기대와, 그 기대 때문에 포기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 우리가 터득해야 할 사랑의 기술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 말대로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바로 이기주의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를 길게 사랑하는 방법. 아마도 드라마를 빙자해서라도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사랑하기'가 아닐지. 달콤한 당의정(糖衣錠) 같은 연애담은 가득하지만 아이 키우기, 가족관계 개선, 부부 상담 등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심리학의 토양은 너무나 척박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중심에 균열이 생겼을 때 상담이란 조언을 통해 짝과 나의 비밀정원을 가꾸는 일은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가치 있는 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