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뿐 아니라 온 생명의 평화 공존을 발원하며 2008년 12월까지 5년간 전국을 걸었던 시민단체 생명평화결사가 다시 생명평화 순례에 나선다. 22일 인천에 모여 오전 10시 문화공간 스페이스빔에서 선포식을 갖고 연평도로 들어간다. 인천 지역 시민단체 회원과 주민들이 함께한다. 1박 2일로 낮에는 걷고 밤에는 공부하고 토론하며 뜻을 모은다. 2월 중순부터는 '한반도 생명평화 공동체'를 위한 100인 100일 순례를 시작한다. 100명이 최소 하루씩, 전국 100개 지역에서 순례단을 이끈다.
2년 만에 다시 순례길에 오르는 것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구제역 파동으로 이 땅의 모든 생명에 위기가 닥쳤다는 자각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 이후 남북 대립이 격해지면서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맴돌고,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구제역 살처분에 소와 돼지가 무참히 죽어나가는 생지옥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순례를 재개하며 발표한 성명에서 이들은 "지금은 생명과 평화를 위해 자기 성찰과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생명평화결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고 서원한 결사체다. 이라크전 발발 직후인 2003년 11월, 당시 지리산 실상사 주지이던 도법스님을 중심으로 발족했다. 미국이 이라크 다음으로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설이 무성하던 그 때, 전쟁을 막고 단순 소박한 삶으로 평화를 실천하자는 뜻으로 모였다. 회원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각계각층 4,000여명이다.
씨앗은 종교인들이 뿌렸다. 2001년 지리산에서 있었던 '좌우익 희생자와 뭇 생명의 해원 상생을 위한 범종교계 100일 기도'가 자라 생명평화결사가 되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등 여러 종교가 동참해 100일 기도를 마치고 다시 1000일 기도를 하던 중 이라크전이 터지자 기도 마지막 날 생명평화결사를 만들었다.
이들은 조용히 활동해왔다. 각자 있는 곳에서 저마다 생명과 평화를 밝히는 등불이 되자는 원을 세우고 공부와 수행, 실천에 힘써 왔다. 여름과 겨울에 생명평화학교, 연 1회 생명평화전국대회를 연다. 순례는 2003년 지리산에서 시작해 2008년 겨울 서울까지, 전국 구석구석 면 단위까지 약 3만리를 걸었다. 가는 곳마다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뭇 생명에 절을 바치고, 좌우대립 희생자 위령제를 지냈다. 북한도 순례하고 싶지만, 허가가 안 나서 못 가고 있다.
황대권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은 "결사운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념적, 지역적, 경제적으로 갈가리 찢겨 있음을 절감했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 <야생초 편지> 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 자신도 좌우 이념 대결의 희생자다.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3년 2개월 감옥살이를 하고 98년 출소했다. 이 사건은 2005년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야생초>
"분열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군요. 먹고 살기도 바쁜데 생명이니 평화니 하는 건 그저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다, 나부터 평화로워져 그 마음으로 사람과 생명을 대하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거라는 생각은 낭만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무관심과 편견에 부닥칠 때 가장 힘들지만, 우리는 꾸준히 이 길을 갈 겁니다."
순례를 중단한 지난 2년 간, 생명평화결사는 이 운동이 세상 속으로 깊이 오래 갈 수 있도록 생명평화마을을 만드는 준비를 해왔다. 전남 영광군 대마면 태청산 자락의 16만㎡ 부지에 아쉬람(일종의 수행학교)과 마을을 꾸릴 계획이다. 이 땅은 황 위원장이 선친에게 물려받아 생명평화결사에 기증한 것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황 위원장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다.
생명평화결사의 순례는 이번 주말 연평도 평화행진, 2월 중순 시작하는 100인 100일 순례가 끝난 뒤 다시 100년 순례로 이어질 계획이다. 생명 살림, 평화 살림의 큰 원을 이루려면 적어도 100년은 공을 들여야 되지 않겠냐며 도법스님이 제안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5월에 발표한다. 생명평화의 대동세상을 향해 꿈이 걸어간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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