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장관이 바뀐다. 3년 만이다. 배우 장관이 물러나고, 이번에는 정치인 장관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의 문화정책이 새로운 변화와 활력을 가지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장관의 배경이다. 유인촌 장관이 여전히 배우이듯, 새 장관 역시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여전히 현역 국회의원인 정치인이다. 배우와 정치인은 비슷하다. 인기를 먹고 산다. 그것을 위해 의도된 연기로 이미지를 연출해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를 좋아한다. 누구보다 현실을 흉내 내고, 걱정하지만 그 자신 현실이 될 수는 없다.
문화도, 문화정책도 없다
그들은 어떤 자리에 있어도 배우이고, 정치인이다. 연기와 정치를 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문회에서 19대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여당의원들의 질문에 명확히 "노(No)"라고 말하지 못한다. 10개월 뒤, 선택의 시간이 오면 그는 길어야 2년으로 끝나는 장관으로 남기보다는 십중팔구 정치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돌아갈 곳이 있는, 돌아갈 곳을 늘 생각하는, '올 인'이 불가능한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과감히 개혁을 시도하고 새로운 정책을 펼치기에는 그로서는 너무 위험하다. 그럴 이유도 없고, 시간도 부족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말썽 없이 지나가자. 장관만이 아니다. 중도 낙마한 교수 출신 영화진흥위원장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고, 잠시 즐기는 자리로 착각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새 장관에게는 화려한 포장만으로 생색이 나거나, 아니면 그 위에 그럴 듯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문화정책의 터'가 별로 없다는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냉정히 말해 정부의 문화정책은 이미 절반 이상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3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구호만 부르짖을 뿐, 갈피를 못 잡은 채 겉돌고 있다.
미래전략산업으로서 문화에 대한 장기적 비전에 의해 정책이 수립되기보다는 유행에 휩쓸렸고,'선택과 집중'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실행방식의 부재로 이념차별 논쟁만 불러일으켰다. 선풍이 불자, 3D 영상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냄비현상, 특정 문화단체에 대한 감정적 대응, 현장을 반영하지 못하는 콘텐츠 지원, 가요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2차 한류열풍의 방관 역시 정책의 실효성과 디테일 부족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모든 문제는 인사에서 시작됐다. 정권이 바뀌면서 문화계도 이념의 변화는 분명 필요했다. 문화에까지 이념을 개입시키지 말라는 주장은 사실 공허하다. 문화만큼 이념에 민감하고, 이념적인 것도 없다는 사실은 지난 정권의 진보세력들이 이미 증명해 보였다. 다만 MB 정부는 너무 서둘렀다. 절차와 당위성을 무시한 조급증이 가져온 결과는 문화적 성과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무리한 쫓아내기와 편협한 인사로 인한 끝없는 진통과 잡음이었다.
이렇게 정부는 처음부터 자신들이 구상한 문화정책을 펼칠 시간도,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문화적 결실 없이는 국민의 문화 향수 확대, 문화를 통한 소통과 균형도 없다.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 안타깝게도 신재민 장관 후보자의 낙마로 잃어버렸고, 사실상 장관 부재 속에서 문화정책은 5개월 더 방황했다.
새 장관 왔으니 달라질까
2년밖에 남지 않은 시간 앞에서 새 장관이 문화와 예술로 사회통합과 갈등조정 운운하고, 공무원들의 종교편향 방지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겠다고 하고, 산하기관장 해임 문제를 원점부터 챙겨 보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문화정책에 관한 한 지난 3년의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겠다는 것도 공허하다. 문화적 소통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문화 그 차체에 있다.
새로 올 장관이 얼마나 열정을 쏟을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10개월로 이룰 수 있는 문화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1년이 남아 있지만 사실상 이 정부의 문화정책도 끝이다. 지금 문화부장관에게 필요한 것은 멋진 연기도, 박지원 전 장관이 이룩한'문화예산 1% 확보'의 정치력도 아니다. 마음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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