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무용수에게는 ‘브라보(bravo)’, 여성 무용수에게는 ‘브라바(brava)’, 남녀 무용수 모두에게는 ‘브라비’(bravi)라고 환호하는 겁니다. 저도 처음엔 잘 구분을 못해서 ‘브라~’하고 말았지요.”
한국 발레리노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이원국(44)씨가 발레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발레 입문용 소극장 공연과 정기공연을 꾸준히 해 나가더니 최근에는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까지 해 가며 대중과의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18일에도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 대학로 성균소극장에서 열고 있는 ‘이원국의 발레이야기’공연에 한창이었다. 30여평 남짓한 무대에 선 그는 여전히 날래고 근육질이었다. 턴을 비롯한 동작에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 시종일관 물 흐르듯 유연하다. 그의 춤사위와 표정에 드러나는 몰입에 60여명의 관중은 숨을 죽인다.
그들에겐 그들의 길이, 내겐 나의 길이
“저는 계속 춤이 추고 싶을 뿐이에요. 저는 저의 할 일을 하겠습니다.”
2004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에서 서른 일곱의 나이로 은퇴한 뒤 예술계는 그의 행보에 주목해 왔다. 1993년부터 딱 10년 동안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셜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를 독차지했던 그는 그야말로 1인자이자 1세대였다.
86년 데뷔한 이씨의 섬세하고 유연한 표현력에 한국의 발레 애호가들은 발레리노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표현력에 한국 발레가 발레리나에서 발레리노까지 시야를 넓히게 된 셈이다. 솔리스트로서 그의 천부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에 의한 춤의 완성도는 자타가 공인한다.
국립발레단 등에서 함께 활약했으나 외국에서 학위를 따고 현재는 대학 교수로 자리 잡은동료들과 그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이 좋단다.
고급 발레 있겠지만, 대중 발레도 있어야
“와인을 제대로 알려면 공부를 엄청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와인을 즐기고 똑같이 맛있다고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잖아요. 발레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는 현장에 방점을 찍는 것은 예술가로서 일종의 시대정신이라고 설명했다.“오페라하우스에서 하는 고급 발레도 있어야 하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대중 발레”라는 말이다. 2008년부터 대학로 소극장에서 매주 월요일 벌여 온 그의 소극장 공연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의 현장주의는 일관성이 있었다. 2004년 은퇴 직후 만든 이원국발레단은 군부대를 순회하며 순회공연하는 등 찾아가는 공연을 쉴새 없이 펼쳤다. 행사비가 없어 단원이 각자 고속버스를 타고 공연장에서 모여 출연료 없이 공연을 한 적도 있다.
“한번은 낙안읍성 야외무대 공연을 하다 비가 내렸어요. 한옥에 전시된 밀납 인형을 뜯어내고 툇마루에서 공연을 했다니까요.” 그는 껄껄 웃었다.
30여평 남짓한 지하창고를 개조한 공연장에서는 발레리노에 의해 들여 올려진 발레리나의 팔이 천장에 닿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와 그의 발레단은 계속 백조처럼 우아하게 날고 뛰기를 멈추지 않았다.
“저는 한번도 제가 1등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마음껏 춤출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해요.”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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