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사정(蓋棺事定). 관뚜껑을 덮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즉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말(두보)이다. 극단 독립극장의 새 무대 ‘너의 의미’ 희곡의 앞머리에는 저 사자성구가 커다랗게 찍혀 있다. 신년의 연극 무대는 인간에 대해 보다 깊이, 신중히 생각해 줄 것을 요청하며 출발한다. 더러 코미디 형식이 앞서지만 객석이 안고 돌아가는 것은 깊은 연민과 공감의 정이다.
‘너의 의미’는 자신의 재산을 탐하는 자식들이 싫어 금붕어에게만 속내를 털어놓는 노인에게 찾아온 제2의 생을 그린다. 동남아시아 여성과의 결혼을 알선한다는 광고 전단에서 본 아가씨를 잊지 못해 결혼을 선언한 노인과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코믹하다.
“환자분 며느리시라고 했죠? 제 생각에는 미리미리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두근거리고 흥분하는 증세가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꼭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돌연사를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이다. 그러나 결국 유산 문제가 얽히면서 이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국립극단 출신의 원로 배우 김재건의 열연 아래 원영애 김아영 등이 출연한다. 22~30일 게릴라극장. (02)764_7462
극단 나비소풍의 ‘명퇴와 노가리’는 퇴출당한 40, 50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 짙게 드리운 그늘을 희화한다. 집에 들어온 강도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며 차라리 죽여 달라고 덤비는 퇴직자, 사실 자신도 명퇴 후 눈칫밥만 먹을 수 없어 이 길로 멋지게 재기하려 한다는 강도 등 등장인물에 거리감을 느낄 관객은 없을 것이다. 부인은 쥐꼬리 퇴직금을 갖고 중개업으로 나섰고, 아들은 서른 넘도록 실업자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오랜 동안 연출을 해 온 김종연씨의 톡 쏘는 무대가 기대된다. 신기섭 임학순 등 출연. 21일~4월 17일 더굿씨어터. (02)3676_3676
명품 조연 오달수, 올해 남산예술센터 상주작가 동이향씨, 근대 한국에 대한 독특한 시선의 연출가 성기웅씨 등 세 사람이 모여 ‘해님 지고 달님 안고’를 만든다. 이다엔터테인먼트의 ‘해님 지고 달님 안고’는 경계를 허문 연극이다. 1997년 초고가 나온 이래 개작돼 온 이 작품은 시대도 없고, 꿈인지 현실인지도 불명하다.
세상과 외떨어진 곳에서 끔찍하리만치 깊은 아버지의 정 속에서 자라다 어렵사리 벗어나 홀로서기까지를 상징적 어법으로 그렸다. 토속적 이미지와 언어가 다채롭게 실현돼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즐겁다. 2월 10~27일 문화공간이다 2관. 1544_1555
21일부터 무기한 공연에 들어가는 극단 글로브의 ‘동치미’는 2009년 초연 당시 6개월 만에 2만여의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 기획사 조이피플이 이번 무대를 앞두고 내놓은 보도 자료는 제목을 ‘연초부터 최루탄 쏘나?’로 로 잡고 또 다른 성공을 기원한다. 극단 측은 “주위에서 흔히 보는 소재를 이용, 객석의 감정이입과 동화를 극대화했다”며 이 극이 갖는 티켓 파워의 요체에 대해 나름의 설명을 붙이고 있다. 21일부터 북촌아트홀. 무기한 (02)988_2258
그러나 이들 따뜻한 감성의 연극을 보는 시선까지 따스한 것만은 아니다. 연극 평론ㆍ극작가 김명화씨는 “연초라는 시점에 기대 익숙한 정서에만 호소하다 보니 연극이 왜소화의 길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며 “가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갖고 감상만을 자극하려는 기획자, 그에 저항하지 못 하는 연극인 등이 함께 빚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장병욱 기자 aje @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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