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0대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가 지난해 처음으로 1,000개를 넘었다고 한다. 2005년 702개였던 계열사가 5년 만에 1,069개로 늘었다. 특히 10대 그룹의 경우 350개에서 538개로 188개나 늘었다. 전체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맞춰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고 인수합병(M&A) 전략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관련 법령이 폐기된 시점에 무차별로 몸집을 급속히 불린 점이나 그룹 총수 일가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 등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은 잘 따져봐야 한다.
엊그제 '재벌닷컴'이 내놓은 자료는 '재벌=문어발 확장'이라는 과거의 등식을 상기시킨다. 특히 이런 확장이 집중된 시기와 내용이 묘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계기로 핵심 역량에 집중하던 그룹들이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폐지(2005년),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2009년)를 틈타 몸집 불리기에 나선 흔적이 짙기 때문이다. 대ㆍ중소기업 상생과 경영 투명성이 사회적 담론이 되고 규제 완화가 정치경제적 의제가 됐던 시기에 재계는 딴 짓을 했다는 얘기다.
30대 그룹의 계열사로 새로 편입된 업종과 지분구조를 보면 사업 확장이나 시너지효과보다 편법 상속과 문어발 영역 확대 의혹이 더 짙다. 제조사는 31개사에 불과한 반면 서비스ㆍ금융 등 주력사업과 무관한 비제조업체가 129개로 대부분이었다. 또 롯데 식품계열사 B사처럼 그룹총수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대주주인 경우가 많았다. 재계 주역 그룹의 상생ㆍ책임 운운은 공염불이었고 마음은 잿밥에 가 있었다는 얘기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때마침 정확히 지적했다. "우리 대기업들은 너무 공룡처럼 성장해왔다. 눈먼 돈도 더러운 돈도 깨끗한 돈도 모두 갖겠다고 한다." 그는 또 "같이 사는 사회엔 사랑 의리 정의 도덕이 있다"고도 했다. 문제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듯 시장에선 이런 덕목보다 탐욕이 먼저라는 사실이다. 경쟁당국이 공정의 잣대로 더 엄격히 다루어야겠지만 기왕에 말을 꺼낸 정 위원장의 역할과 책임도 크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