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비자금 의혹사건의 시작인가, 끝인가. 19일 검찰이 이호진 그룹회장에 대해 횡령 배임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향후 수사방향이 주목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 일가족이 각종 불ㆍ탈법 등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은 3,000여억원. 이 가운데 1,100여억원의 조성 과정만 드러났을 뿐 나머지 1,900여억원의 조성 경위와 비자금 사용처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사안의 폭발성이 잠재돼 있다고 보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검찰의 태광그룹 본사 압수수색이 시작된 직후 각종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관계 로비설이 제기됐다. 쌍용화재 인수과정의 특혜 시비나 상속세 추징 당시 국세청의 석연찮은 조치, 케이블방송업체 합병 때 불거진 방송법 위반 논란과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등에 따라 태광 측의 로비의혹이 제기된 바 있어 향후 검찰의 비자금 사용처 수사가 정ㆍ관계로 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검찰관계자는 "비자금 중 일부가 유상증자대금이나 가족 보험금으로 사용된 게 확인됐다"며 "정ㆍ관계 로비에 자금이 쓰였느냐에 대해서는 말해줄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말을 아꼈지만 여운을 남기는 발언이다.
사실 조성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1,900여억원도 의문투성이다. 태광조차도 제대로 소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선대 유산이거나 다른 형태의 불법 조성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검찰은 비자금 관리자로 알려진 이 회장의 모친 이선애 상무를 소환, 이 부분을 집중 추궁했지만 소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에 대해 영장이 청구된 만큼 이 상무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회장이 횡령 배임 조세포탈 등으로 조성ㆍ관리한 1,100여억원은 황제경영의 폐해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이 회장이 각종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 회사를 통해 자금을 조성하고 임직원 명의 등으로 이를 관리하면서 회장과 일가족의 사익을 불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태광산업이 생산하는 섬유제품의 생산량을 조작하거나 판매 가능한 제품을 폐기 처분한 것처럼 속여 제품을 빼돌려 판매하는가 하면 급여 허위 신고 등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가로채거나 작업복 대금을 빼돌리는 등 다양한 횡령수법이 사용됐다. 여기에다 회장 직위를 이용한 회사 자산과 비상장 주식의 헐값 인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타 기업의 비상장주식 인수로 수백억원대 시세차익 등 각종 불법적 행태로 엄청난 자금을 챙겼다. 더욱이 비자금을 은닉하는데 임직원 명의 등으로 무려 7,000여개의 차명계좌 및 차명주식계좌를 만들어 관리한 것으로 조사돼 재판에서 사실로 확정된다면 법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을 만한 재벌 총수의 전횡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세 차례 검찰 소환조사과정에 경영판단 등을 내세우며 혐의 사실을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법적 다툼의 소지가 크다는 얘기이고 인신구속에 까다로운 최근 법원의 방침상 21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방어권이 필요한 사안'으로 판단, 영장이 기각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정ㆍ관계 로비를 포함한 향후 검찰의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보강수사 방침을 밝힌 검찰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사건도 태광 건과 유사한 패턴이지만 한화그룹 재무책임자인 홍동욱 전 한화 CFO와 한화S&C의 주가 산정을 맡았던 김모(46) 회계사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검찰의 수사동력도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한편, 검찰은 태광 계열사인 티알엠ㆍTHM 이성배(55) 대표와 배모(51) 상무에 대해서도 각각 회삿돈 88억여원을 횡령했거나 공사대금을 부풀려 18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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