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불안한 조짐을 보여 정부가 나섰다고 한다. 여기서 물가 불안이란 아마 서민 생활에 영향을 많이 주는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물가 불안이 발생하고, 대책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 보통 물가수준이라고 할 때는 전반적인 재화의 가격 수준을 의미한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재화의 절대적인 가격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화폐와 재화 간의 교환비율을 말한다. 사과 1개에 1,000원이라고 한다면, 사과 1개와 우리나라 화폐 1,000원과 교환이 된다는 말이다. 물가 수준이 오르는 것은 재화와 교환하기 위해 화폐를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화정책이 물가수준 결정
만일 우리 경제에서 거래되는 재화의 양은 동일한데 단지 유통되는 화폐의 양이 많아지면 당연히 재화와 교환되는 화폐의 양도 많아지고 물가 수준이 증가하는 결과가 생긴다. 우리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결정하여 거래 때 재화들과 교환되는 화폐의 공급량을 조절하고 결과적으로 물가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화폐 공급이 늘어나 모든 재화의 가격이 동일하게 오른다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사과 값, 휘발유 값, 임금 등 모든 재화의 가격이 동일하게 10%씩 올랐다고 가정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후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자. 만일 화폐 공급이 늘어 모든 재화의 가격이 동일하게 올라간다면 그 경제에 사는 사람들의 후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화폐를 직접 소비하지 않고 다른 재화를 구매하는 매개수단으로 사용하는데, 모든 재화의 가격이 동일하게 오른다면 사람들의 소비는 화폐가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통화의 공급에 따라 모든 재화의 가격이 동일하게 변화한다면 사람들의 경제 활동에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으므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왜 물가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통화 공급이 변할 때 모든 재화의 가격이 동일하게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이때는 가격이 많이 오르는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가격이 적게 오르는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부(富)를 가져가는 결과가 생긴다. 통화 공급이 늘어나면 물가 수준이 오르게 되는데 여기서 부의 재분배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생산하는 재화의 가격은 많이 오르고, 어떤 사람이 생산하는 재화의 가격은 적게 오를까?
물가가 오를 때 자신이 생산하는 재화의 가격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시장에서 독점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임금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경쟁을 하므로 독점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물가가 상승할 때 임금은 많이 오르지 않는 경향이 크다. 영세상인들도 물가 수준의 상승에 맞춰 자신의 이윤을 증가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담합 규제는 늘 해야 할 일
한편 생활필수품이란 가격이 오르더라도 꼭 소비해야 하는 물건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재화의 가격을 올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물가 수준이 오를 때 임금노동자와 영세상인 등 서민들은 그들이 버는 돈을 일반적인 물가 수준의 상승에 맞춰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반면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생산하는 재화의 가격을 올릴 수 있으므로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는 결과가 생겨난다.
따라서 정부에서 물가 불안에 대응하는 정책을 쓴다면 우선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통화정책이다. 그런데 최근 물가 불안을 이유로 기업들의 담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은 어쩐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기업 간의 담합은 물가가 불안하건 안 하건 엄중히 규제해야 하는 사안이지 물가가 불안할 때만 주목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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