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잘린 귀가 오른쪽일까요, 왼쪽일까요?”
난데없는 작가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설명이 이어졌다. “고흐의 자화상으로 보면 오른쪽 귀인 것 같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렸으니 실제 잘린 귀는 왼쪽이죠.”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용백(47)씨 대표작 ‘거울’의 발단이다. 그는 거울에 맺힌 상과 실제 모습의 좌우가 뒤집히는 것에 착안해 ‘거울’ 작업을 시작했다.
올해 6~11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제 54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이씨를 경기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에 있는 그의 작업장에서 만났다.
작업장 입구의 ‘피에타’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그가 만든 ‘피에타’는 전통적인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모습 대신 플라스틱 재질의 딱딱한 로보트로 대체됐다.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든 거푸집(성모마리아)과 그 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예수)으로 이뤄진 것. 이씨는 “거푸집에서 탄생하는 것은 거푸집의 분신인 동시에 그것 자체가 진짜일 수 있죠”라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어 “모태(거푸집)와 분신(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이 서로 싸우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걸 표현했는데, 이는 현대인의 자기사랑, 자기죽음에 관한 의미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작업장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물감과 캔버스는 물론이고 커다란 거울이며 묵직한 스피커, TV, 돌, 낚시 미끼용 인조 물고기, 청동 거푸집 등이 곳곳에 널브러졌다.
발을 떼어 거울 앞에 섰다. 별안간 총 소리와 함께 큰 거울이 와장창 깨졌다. 실제 거울은 안 깨졌다. 거울에 TV 영상과 음악을 덧입혀 공포감을 끼얹은 것이다. 이 작품도 비엔날레에서 선보인다. 이씨는 “관객이 거울을 보는 단순한 행위를 할 때도 테러로부터 결코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꽃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 화려한 꽃 뒤로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번뜩이는 눈빛이 섬뜩하다. 그의 작품 ‘엔젤 솔저’. 이씨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은연 중에 나타낸 것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꽃이 죽음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 한국관 기획을 맡은 윤재갑(43)씨는 그를 “작업과 내용의 폭이 넓고, 한국적이면서도 우리 시대를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작가”로 평했다. 윤씨는 “국내 미술계도 이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받아들이고, 소통할 수 있는 관객들도 생겨났다”며 “좀 더 재미있고 편안하게 예술과 일상이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엔날레가 끝나면 이씨는 다시 창작에 매진할 생각이다. 이씨는 “3년 전 베이징올림픽당시 중국은 베이징 공항 근처 빈민가를 벽돌담으로 둘러쳐 가리고 ‘Culture wall’(문화의 벽)이라고 불렀다”며 “감추려는 것을 드러내서 문화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이 벽을 다른 모형으로 만들어 풍자적인 요소를 넣으면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 했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온 국민이 인간문화재가 되는 날을 보는 거에요.”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