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가운데 최근 우리 정부도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나섰다.'온실가스 목표관리제'와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그것.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 배출 전망치(BAU)대비 30% 감축키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및 시행령'을 발효시켰다.
당장 올해 실시되는 목표관리제는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해주고 이를 초과하면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제도다. 지금까지 약 470개 업체가 관리 대상으로 예비 지정돼 있다. 기업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설비 개선과 기술 개발에 투자를 늘려왔다.
이런 가운데 녹색성장위원회가 지난해 11월'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전격 발표하고 나섰다. 예정대로라면 2013년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이 제도로 온실가스 배출 권리를 사고 팔 수 있다. 온실가스는 6가지지만 이 중 배출량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의 이름을 붙여 탄소배출권거래제라 부른다. 일단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정하고, 할당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더 내보내야 하는 기업은 초과한 양만큼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대로, 덜 내보내면 돈으로 보상받는다. 현재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27개 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한 상태이다.
녹색위와 환경부는 관련 부처 협의와 공청회를 거쳐 올해 안에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재계와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거래제 도입 반대 움직임이 표면화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두 가지 정책이 공존하면 기업들에게 이중규제가 되기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며"미국과 일본도 시행을 하지 않고 있는 배출권거래제 만큼은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녹색위와 환경부는 두 제도는 상충되지 않으며 목표관리제는 인센티브 없이 한도를 어기면 과태료를 매기는 반면 거래제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면서 탄소시장을 만들어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반박한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빨리 도입돼야
"온실 가스 감축은 생존 문제, 낡은 경제 논리보단 승자의 길 가야"
온실가스 감축은 당장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피해도 좋은 사안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만이 기후변화에 맞서는 외길이기 때문이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온실가스 탄소배출권거래제 시행을 "독박 쓰는 것"으로 비유했다 한다. 한 나라 장관의 언어구사력이 그 정도 수준인지도 씁쓸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문제는 그가 지닌 잘못된 인식에 있다. 배출권거래제가 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일인가.
최 장관의 주장은 이렇다.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국제사회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면 우리만 손해 본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3년 전 중국에서도 똑같은 논리가 판을 쳤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주장하던 한 대학교수는 관료사회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도 없는 중국 경제에 족쇄를 채우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 정부 내에서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후변화협상단 대표이자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의장인 시에 젠화(解振華)는 최근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최대한 빨리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전력의 70%를 석탄화력 발전소에 의존하는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가다. 그럼에도 배출권거래제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은 두 가지였다. 에너지 효율이 곧 국가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중국 지도층의 인식과 석탄 수입량이 수출량을 초과하면서 고조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바로 그것이다. 에너지효율이 낮은 공장들을 강제로 문 닫게 했던 몇 년 전 경험도 한 몫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는커녕 일자리만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산업계는 중국과의 수출 경쟁을 이유로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중국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자 이번에는 일본과 미국 타령이다.
두 나라 모두 배출권거래제 시행이 어려워진 마당에 우리가 먼저 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효율이 우리보다 3배나 높은 일본을 핑계 삼을 때가 아니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효율 국가지만,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과감한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에 제시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예정보다 1년 늦춰 2014년부터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석유산업의 로비에 춤추는 공화당의 배출권거래제 발목잡기를 흉내 내다간, '고용 없는 성장'만 가속화하기 십상이다.
배출권거래제 반대론자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늘 경제문제로 환원시킨다.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면 산업계가 져야 하는 부담이 최소 20조원"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당장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피해도 좋은 사안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만이 기후변화에 맞서는 외길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증가가 지구 온도를 높여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배출권거래제를 두고 갑론을박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문제 이전에 '생존'의 문제인 이상, "당신들 먼저"라고 외치는 것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도덕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경제를 보는 제대로 된 눈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부담액 20조원이라는 수치의 신빙성도 문제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왜 계산에 넣지 않는 것인가.
배출권거래제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이 일부 기업들에겐 독일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는 약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온실가스 감축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이 낡은 경제논리에 사로잡혀 승자의 길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 잃는 것이 크다
"철강·자동차 산업 등 직격탄, 국제경쟁력 감안해 시행 신중을"
산업계는 목표관리제를 수행하기 위해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이는 앞으로 1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 이하로 감축하겠다는 것으로 1990년 이후 1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이 2배로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대단히 의욕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을 추구해 온 우리나라로서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정부는 탄소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 사회의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먼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고,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는 미국은 지난해 11월 2일 중간선거 이후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철회할 뜻을 밝혔다. 그 이유는 자국 내 산업계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질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본도 지난해 12월 각료위원회에서 배출권거래제의 2013년 도입을 무기한 연기했다. 역시 국내 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의 이런 결정이 산업계의 우려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까지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은 유럽연합(EU)과 뉴질랜드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배출권거래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지 않는 것은 제도의 도입으로 '얻는 것'(온실가스 감축효과)보다는 '잃는 것'(산업경쟁력 약화)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할 경우, 산업계 전체적으로 매년 약 5조6,000억원에서 최대 14조원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 및 배출권 구입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특히 철강산업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 철강생산량과 직결돼 있어 배출권거래제의 적용을 받으면 조강생산 감소에 따른 자동차, 조선 등 연계 산업과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 영향이 클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철강 총 생산량의 5% 감축 때 조강 200만톤을 감산해야 하며, 이로 인해 약 2조원의 매출감소 및 약 5,000명의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멘트 산업도 대표적 국내 시멘트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700억원 정도이지만, 배출권거래제 시행에 따른 배출권 구입 비용이 700억원에서 최대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경우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발전 부문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약 3조6,000억원에서 최고 27조원의 비용 부담이 발생, 전기요금 상승이 불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기요금이 1~2% 오르면, 물가 등 사회, 경제적으로 파급 효과가 상당한 만큼 배출권거래제 도입은 국민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현재 정부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토대로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우선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에너지효율 향상 및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으며, 그 결과 대부분의 업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갖추고 있어 온실가스 추가감축 여력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산업계는 정부의 목표 달성을 뒷받침 하고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목표관리제를 수행하기 위해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산업계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배출권거래제도가 갖는 장점이 있을 수는 있으나 국제 기후변화 협상의 지연 및 불투명성, 경제 강국의 배출권거래제 도입 보류 및 철회 등의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시행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산업계의 국제경쟁력을 고려하고 기후변화협상 진행상황과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도입 동향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문식 대한상의 녹색성장환경기후위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