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코스닥 열풍이 불었을 때 어땠는지 생각해보세요. 증권사들이 있는 여의도는 말할 것도 없고,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던 강남 테헤란로까지 그야 말로 불야성이었죠. 외환위기가 터진 지 불과 2~3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만큼 흥청거렸던 때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한 증권사 임원)
사실 그랬다. 과소비였든 아니든, 부정한 거래나 향응을 위한 술자리였든 아니든, 코스닥의 폭발은 엄청난 소비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경기활황의 기폭제가 됐다. 주식이나 부동산등 자산가격이 뛰면 소비도 늘어난다는 바로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절정에 달했던 것도 이시기였다.
부의 효과는 이미 통계적으로도 입증된 이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과거 20년간 추이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자산가치가 오르면 소비는 2%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가치가 1억원 늘면 이를 현금화하지 않더라도 소비가 200만원쯤 늘어난다는 얘기다. KDI 김영일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소득보다는 자산증가의 소비 기여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 20년간 중소득층과 고소득층은 코스피지수 10% 상승 때마다 명목소비가 3.5~3.6%나 늘어나는 등 금융자산 가치변동에 민감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부의 효과'가 예외다. 대내외적 악재, 특히 천안함 피격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2,100을 넘어 새로운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소비심리는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직원은 "주가가 처음 1,000을 넘었을 때나 2007년 2,000을 돌파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이른바 '증권경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부의 효과가 무색해진 것은 우선 이번 활황장의 특성 탓이 크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요즘 증시는 철저하게 외국인에 의해 상승하고 있어 국내 투자자의 체감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며 "오르는 종목도 일반 투자자가 소유하기 어려운 주당 40만~50만원 짜리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개미(일반)'투자자가 많이 몰리는 코스닥지수는 지난해 오히려 0.6% 하락했다. 부의 효과가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개인들의 주식통장잔액이 늘어나야 하는데, 외국인ㆍ대형주만 뜨다 보니 증시활황을 전혀 체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같은 돈을 벌었어도 직접투자 때는 왠지 '공돈'이라 여겨 소비를 늘리게 되는데 펀드는 저축해 얻은 거라고 생각하는 심리가 커 씀씀이를 크게 가져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도 무시 못할 원인.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년간의 자산효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집값이 10% 증가했을 때 고소득층의 명목소비는 9.8%나 상승, 코스피지수 10%상승 때의 소비증가율(3.5%)보다 3배 가량 높았다. 주가가 오른다고는 하지만 집값이 묶여있다 보니, 부의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개인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월등히 높은데다 여전히 부동산보다 주식을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령화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자산가치가 늘어도 소비 보다는 저축을 늘리려는 심리가 확산된다"며 "일본이 그랬듯이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 다른 자산팽창기에 비해 경기 불확실성과 특히 인플레우려가 큰 점도 이유로 꼽힌다. 서민들로선 뜀박질하는 물가, 수천만원씩 뛴 전세값, 더구나 금리인상으로 커지게 될 이자상환압박 앞에서 소비를 늘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영일 연구위원은 "부의 효과에는 향후 전망이 크게 작용한다"며 "현재의 자산가격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느끼면 실제 소비증가는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며 말했다. 어떤 경우든, 이번 주가상승은 소비심리상승이나 경기개선으로 이어지기 힘든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