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들었다. 새벽이다. 지금 내가 머무는 산간 집 마당이 영하 몇 십도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한옥의 문짝 틈새로 밀어닥치는 칼바람이 몸에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지리산 추위의 깊이를 감히 가늠해볼 뿐이다. 하지만 황토로 만든 바닥은 밤새 쩔쩔 끓었다.
몸은 불판 위에 누운 것 같은데 코 끝으로 눈썹 끝으로는 바람이 살을 차갑게, 날카롭게 저민다. 바람을 피해 밤새 자리를 바꿔 누워가며 투덜거리다 새벽에 명징하게 깨닫는 집의 철학이여. 만약 집이 완벽하여 한 치의 웃풍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나는 구들장의 뜨거움에 더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차고 뜨거움의 적절한 조화가 가르친다. 그 속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 우리들의 집은 언제나 웃풍에 시달렸다. 그 바람을 막기 위해 수를 놓아 만든 막내 고모의 두 짝 가리개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 겨울바람이 있었기에 가족의 정은 더 깊어졌다. 사실 아파트는 무풍지대다.
조금만 더워도 사람도 시멘트 덩어리처럼 건조해진다. 세상의 기후와는 무관하게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집. 화초처럼 재배되는 얼굴 노란 아이들. 그렇게 방바닥이 뜨거웠는데도 지난밤 나는 목이 마르지 않았다. 그렇게 바람이 밀려 들어왔는데도 기침 한 번 하지 않았다. 도대체 내 감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가 감기를 앓긴 앓았단 말인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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