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두바퀴희망자전거' 사람들노숙인 출신 10명, 버려진 자전거 뚝딱뚝딱작년 400여대 기부 "도울 수 있는 것에 감사"
새벽 어스름에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겨 입는다. 몇 년 전만해도 술 마시는 것 외엔 잠자는 시간이 삶의 전부였던 그에게 비몽사몽 '작업반장'이란 단어가 퍼뜩 떠오른다. '작업반장 첫날인데, 지각하면 안 되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니 발걸음은 가볍다. 17년 간 거리를 떠돌았던 손희준(49ㆍ가명)씨에게 출근은 여전히 버겁고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는 이래봬도 어엿한 5년차 직장인이다.
손씨는 '두바퀴희망자전거'(이하 두바퀴)에서 일한다. 버려진 자전거를 수리해 싼값에 팔거나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사회적기업이다. 지난해 말엔 서울 용산구가 땅 90평을 빌려줘 작업장도 새로 꾸렸다. 13일 한강로 고가도로 아래에 마련된 두바퀴의 컨테이너 작업실에서는 손씨 외에도 10명의 직원들이 안장을 새로 박고 볼트를 조이는 등 자전거 수리에 여념이 없었다.
손씨는 이번에 작업반장이 됐다. 처음 두바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일주일씩 무단 결근을 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은 뒤로는 지각 한번 하지 않았다. 오랜 노숙 생활의 더께를 털어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버려졌다. 고향이자 집으로 여겼던 제주의 한 고아원은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나가라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배도 타고 공사장 막노동도 했다. 작은 구둣방을 차리고 싶었던 그는 1987년 작은 목욕탕 안에 세를 얻을 기회가 생겼지만 사기를 당해 빚만 잔뜩 떠안았다.
그를 반기는 곳은 거리밖에 없었다. "부모형제 하나 없는 몸뚱이, 살아서 뭐하나 싶었어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죠." 배가 고프면 일하고 가끔 구걸도 하면서 술과 잠으로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6년 가끔 들르던 노숙인쉼터에서 자전거 수리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들었다. '기술'이란 말이 얼어붙어있던 그의 가슴을 녹였다. "그냥 어디 청소해주고 이러는 것보다 기술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댔다. 그는 바로 두바퀴의 식구가 됐다.
규칙적으로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도 조금씩 누릴 수 있었다. 적은 돈이지만 저축도 하고, 노숙인 대상 인문학 강의도 1년 넘게 수강했다. 글 쓰는 재미도 붙였다. 거처도 서울역 지하도에서 쪽방으로, 이젠 임대주택으로 옮겨왔다. 버려지고 망가진 고물 자전거를 새 것으로 만들어가는 동안 손씨는 스스로의 삶도 하나하나 수리해 나갔다.
손씨의 두바퀴 동료 10명도 모두 노숙인 출신이다. 대다수가 사업에 실패하고 부인과 이혼한 뒤 가족을 등지게 됐다는 사연을 가진 이들이다. 유독 앳돼 보이는 윤민중(31ㆍ가명)씨는 "전에는 아르바이트도 한 곳에서 3개월을 넘기지 못했는데 두바퀴에선 벌써 2년째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두바퀴의 젊은 피다.
빠듯한 살림에도 이들이 꼭 여는 연례행사가 있다. 매년 5월 용산구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자전거를 기부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받자마자 냉큼 올라타서는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기분이 참 좋아요. 내 인생 하나도 건사하지 못했는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손씨는 다만 지난해엔 400대의 자전거를 나눠줬는데 올해는 기증자가 줄었다며 걱정이다.
"조그만 자전거포 하나 차리면 좋지." "여자친구 만들기." 각자 새해 소망을 나누는 중에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동춘(64ㆍ가명)씨가 살짝 말했다. "가족들 다시 만나 손자들에게 내가 수리한 자전거를 선물하고 싶어."
작업반장답게 손씨가 마무리를 했다. "그래요, 더 열심히 일합시다." 희망을 굴리는 두바퀴 직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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