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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가 미처 몰랐던 편집된 과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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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가 미처 몰랐던 편집된 과학의 역사'

입력
2011.01.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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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파라 지음·김학영 옮김/21세기북스 발행·608쪽·2만5,000원

요즘 과학계 대세는 융합이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을 가르고 있던 벽이 점차 허물어지는 추세다. 미술 음악 사회학처럼 전혀 달라 보이는 분야에까지 과학의 손길이 점점 뻗어 가고 있다.

퍼트리샤 파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그의 책 <우리가 미처 몰랐던 편집된 과학의 역사> 에서 바라본 과학은 원래 뿌리부터 융합된 학문이다. 과학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잣대가 시대마다, 사람마다 달랐기에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역사와 사람에 의해 편집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과학인가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이나 과학자란 말이 없었다. 저자는 과학사에 과학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때가 1833년이라고 소개한다. 당시 영국과학기술진흥협회에 모인 학자들이 다양한 관심 분야를 포괄할 만한 개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고, 그 중 케임브리지대 천문학자 윌리엄 휴얼이란 인물이 과학자란 말을 제안했다.

이후 19세기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대학에서 배울 만한 가치 있는 과학으로 도덕 역사 문법 음악 그림을 꼽았다고 한다. 지금은 과학과 전혀 다른 과목인데 말이다. 당시엔 예술 언어학 논리학 수사학 등을 모두 과학이라고 불렀다. 음악이나 미술작품에서 과학적 요소를 찾으려 하는 최근 융합연구자들의 시도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과학의 세부 분야들도 서로 다른 직업이나 기술이 융합돼 생겨났다. 화학은 연금술과 약품 제조 같은 일상적 기술에서부터 발달했다. 생물학은 약재상 상인 수집가들이 쌓아 온 지식을 토대로 생겨났다. 지질학 역시 광부 측량사 농부 군인들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천문학은 별 관측자나 점성술사가 미래를 예언하기 위해 했던 기록에서 비롯됐다.

다만 그 융합의 역사 중 어느 시점을 과학의 출발점으로 볼지에 대해선 누구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 과학과 미신 또는 과학과 마술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초기 별 관측자들은 우주의 기원이나 작동 원리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홍수 기근 죽음 같은 사건을 예측하려고 했다. 이들을 과학자로 봐야 할까, 아니면 마술사나 점성술사일 뿐일까.

약 2,500년 전 활동한 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 출신 철학자 탈레스를 최초의 과학자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과학의 출발점이라면 이전에 살았던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의 별 관측자들을 배제하게 된다. 결국 저자는 과학의 출발점을 예수 탄생에서 지금까지 온 시간만큼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 기원전 21세기로 택했다. 이 책은 4,000년이라는 방대한 과학사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과학과 과학자의 모습을 되살려 냈다.

과학에도 정치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인류에게 수많은 혜택을 제공한 과학연구는 항상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정치 경제 사회의 흐름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 계속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펼쳐 보이는 과학사는 정치 경제 사회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오히려 그래 왔기 때문에 과학이 지금과 같은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학은 정식으로 과학이란 이름을 갖기 전인 17세기 후반부터 변모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이끈 주체는 학회다. 학자들을 연구실 안에서 밖으로 끌어내는 구실을 했다. 런던왕립학회장을 지낸 영국 식물학자 조셉 뱅크스는 학회 내 여러 위원회 자리에 국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을 앉혔다. 과학사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논문이나 저서가 적다는 이유로 가볍게 취급하는가 하면 정치와 무역에 과학이 스며들게 만든 진정한 혁신가란 견해도 있다.

저자는 과학은 법칙이나 제품 같은 완성품이 아니라 정치 산업 전쟁 의료 같은 사회 여러 분야와 얽히고설킨 하나의 통합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과학 업적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는다. 핵분열에서 나온 에너지로 누구는 전기를 만들고 누구는 폭탄을 만든다. 많은 이들이 더 건강해지고 더 편한 삶을 누리지만 인구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지구온난화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정치적 입장이나 시대의 요구, 물리적 환경 등에 따라 같은 과학 업적이라도 달리 쓰이고 달리 평가받을 수 있다. 때문에 과학사 역시 관점에 따라 편집될 수밖에 없었다.

과학의 주 목적은 미래를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건 수식을 풀거나 실험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과학의 장점을 더 나은 미래와 연결시키는 데는 올바른 정치적 결정 역시 필요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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