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피시먼 지음ㆍ이미정 옮김/이상 발행ㆍ332쪽ㆍ1만5,000원
많은 양의 피클을 싸게 팔았다 소비자들은 환호했지만 반도 못먹고 버리게 됐다 제조사는 파산하고 월마트만 큰 돈을 벌었다.
연어를 싸게 팔자 소비량이 크게 늘었다 덕분에 인근 바다 양식장은 배설물과 항생제로 뒤덮였다.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으나 절묘한 타이밍이다.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거대 자본의 습격'이란 부제목이 뉴스의 헤드라인처럼 눈에 들어온다. 재벌 유통 기업들이 골목 상권을 망가뜨리는 데서 나아가 구제역 난리에 아랑곳없이 LA갈비를 통 크게 할인하는 시점에서 책이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원서는
워싱턴포스트를 거쳐 비즈니스 전문지 패스트컴퍼니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가 썼는데 값싸고 편안한 소비의 이면에 도사린 자본주의 괴물의 정체를 깔깔한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파헤쳤다. 취재의 밀도가 느껴지는 풍부한 팩트에 기교를 걷어낸 간결한 문장이 더해져 르포르타주의 단단한 리듬을 띠고 있다.
<월마트 이펙트> 는 미국의 거대 유통 기업 월마트의 생리를 통해 최저가의 함정에 빠진 생산자와 소비자의 현실을 보여 준다. 월마트 이펙트는 본래 새로운 지역에 월마트가 들어서면 가격 경쟁을 부추겨 기존 상품의 값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월마트가 소비재 시장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슈퍼 갑이 된 후에는 의미가 확장됐다. 월마트>
월마트 이펙트는 이제 경쟁사들에 가해지는 인건비 인하 압력, 제조 업체들이 월마트에 대항하기 위해 합병하는 현상, 마진율이 줄면서 비용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경향 등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이 책은 3세계 노동자 착취, 지구 생태계 파괴, 소비자들의 가치관 변화도 월마트 이펙트의 범주 속에서 설명한다.
싸면 좋지 않느냐는 원시적 소비 마인드는 자본의 집적과 물류시스템의 혁신으로 월마트라는 공룡을 탄생시켰다. 소비자들은 월마트의 매대에 찍힌 낮은 가격, 그리고 그 가격에 물품을 사고 있다는 자기 합리성에 대한 만족 때문에 월마트로 향하는 발길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만족감이 결국 덫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은 월마트 아닌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에 죄책감마저 느낀다. 그 덕에 월마트는 미국 내에 총 4,000여개(2009년 기준)의 디스카운트스토어와 슈퍼센터, 창고형할인매장을 갖게 됐다. 14개 국에 진출한 매장을 관리하는 자회사도 따로 있다. 지난해 포춘이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서 월마트는 다국적 에너지기업 로얄더치쉘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 책은 월마트가 괴물이 되고 난 뒤 시장경제에 일어난 변화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첫째는 소비자를 빨아들이는 최저가의 등장인데 저자는 이것이 "공급사를 압박하고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거짓 가격으로 시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라고 파악한다. 예컨대 월마트에서는 1갤런(약 3.78리터)의 피클을 2.97달러에 판 적이 있다. 소비자들은 환호했지만 곧 이 제품을 사면 반도 못 먹고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제조사는 파산하고 소비자도 결과적으로 낭비를 한 셈이지만 월마트는 큰 수익을 올렸다. 저자는 상품 종류를 바꿔 가며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통큰치킨 논란을 곱씹어 보게 하는 대목이다.
환경오염도 더 싼 것을 찾는 소비 행위의 귀착점임을 이 책은 보여 준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인의 연어 섭취량은 1990년대 들어 세 배 증가했는데 1파운드(약 0.45kg)에 84센트의 가격표를 단 월마트의 해산물 코너 덕분이다. 그러나 이 가격을 위해서 칠레 푸에르토몬트 인근 바다 양식장은 연어의 배설물과 항생제로 더렵혀지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월마트 이펙트의 그늘은 공급자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은 스스로를 합리적 소비자로 생각하고 월마트 마일리지를 적립해 가는 소비자들 또한 거시경제적 관점에선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은 월마트 매장에서 반경 8km 이내에 거주하며 90%는 24km 이내에 살고 있다. 그런데 89~99년 미국의 경제 호황기에 월마트가 들어선 지역(카운티)의 빈곤율 감소폭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월마트가 지역 상인들에 끼치는 궤멸적 영향, 매출과 고용 창출의 괴리 등도 조금 더 싼 가격을 찾아 나선 소박한 행동의 결과치고는 섬뜩하다. 거대 자본에 의해 소매시장이 독ㆍ과점화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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