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14일 도쿄(東京) 게이오(慶應)대 강연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게이츠 장관이 중국의 민간 지도부와 군부간 '소통 부재'를 작심한 듯 질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방문국에서 제3국의 안보 및 내정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외교 관례상 전례가 없을뿐더러, 대상이 직전에 방문한 중국이라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다음주(19일)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최근 안보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양대 강국이라는 점에서 게이츠 장관 발언의 배경이 초미의 관심을 모은다.
게이츠 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중국 지도부의 인민해방군(PLA)에 대한 문민통제가 약한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젠-20'의 시험비행에 대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분명히 보고받지 못한 분위기였다"는 등 군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통제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11일 베이징에서 후 주석과 면담 후 "중국 지도부가 '젠-20'의 시험비행 사실에 놀랐던 것 같다"고 한 중국 군부의 '돌출행동' 시사 발언을 재차 언급한 것이다.
게이츠 장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거에도 중국 군부와 문민 지도자들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2007년 1월 군부의 인공위성 파괴실험, ▦2009년 남중국해 중국어선의 미 조사선 접근 사건 등을 중국 지도부에 보고되지 않은 군부의 독단적 행동의 사례로 열거했다.
게이츠 장관은 "후 주석이 인민해방군에 대한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그러나 군사정보는 지도부에 충분히 전달돼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게이츠 장관이 중국과 일본에서 연이어 중국 민-군의 지휘계통을 문제삼은 것은 중국의 군사위협을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군사대국화를 노골적으로 꾀하는 중국에서 군부의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 안보 불안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선 중국이 올해를 끝으로 후 주석이 정권에서 물러나는 민감한 정권교체기에 있음도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게이츠 장관의 발언은 진실 여부와는 별도로 중국 군부와 그들 행동의 불투명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게이츠 장관의 발언에 대해 중국의 체제상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의도적으로 과장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중국 전문가들은 후 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하고 있고, 인민해방군이 중앙군사위 산하에 있다는 점을 들어 군이 단독으로 중요한 군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지적한다. 후 주석에 대한'반란'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게이츠 장관이 의혹을 제기한 것은 동북아 정세, 나아가 세계 안보환경에 미치는 중국의 심대한 영향력을 감안, 중국 정부에 군의 통제를 보다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이츠 장관이 강연에서 "예기치 않은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중 간 민군 양쪽이 참가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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