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군, 이제 한 달 후면 대학 졸업식이네. 이미 취직에 성공한 졸업생들은 마음 편하게 졸업식을 맞겠지만, 취업하지 못한 학생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무거워지네.
학생들의 진로 결정이나 취업 준비를 지도할 때, 자네 생각이 항상 나고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자네 이야기를 해주곤 하지. 내가 K군 자네를 처음 본 것은 자네가 군 제대하고 복학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하네. 개강 첫 수업이 끝난 후 자네는 내 연구실로 찾아와서, 노동 분야에 자네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고 말했었지.
'평생 일 할 분야' 선택
그 때 나는 자네가 너무 당돌해 보이고 신중하지 않게 보였지만, '자기가 평생 동안 일을 할 분야'에 대해 말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네.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살 것인가,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 막연하게 어떻게 하면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나 자기 소개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묻는데 그치곤 하는데 말일세.
평생 직장은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지. 한 회사에 입사해서 정년까지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야. 설사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취직한다고 해도, 60세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자네 세대는 그 이후에도 40년의 인생이 더 남아 있을 것인데 말이야.
그래서 평생 현역으로 일할 수 있도록 자기 분야를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분야에서 내공을 키워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내가 자네에게 말했던 것일세. '조직'이 책임 져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공'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지.
K군은 자기 분야를 정해서 나를 찾아왔지만, 내가 몇 번이나 다짐했던 것 기억하는가? 노동 분야가 정말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인지,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으로 자기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자네가 귀찮을 정도로 내가 물었었지. 그것은 자기 만족이 중요해서가 아닐세. 그러한 자기 확신과 열정이 없으면 그것이 어떠한 분야이든 거기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었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소개서는 이력서를 풀어 놓은 글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왜 이 분야를 자기의 평생 직업으로 선택했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하고, 그래서 행간에서 일에 대한 열정이 느껴질 수 있어야 하며, 평생 직업을 위해 학생 시절에 무엇을 준비했는가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지. 이러한 고민과 준비에 쏟아야 할 학창 시절의 시간을 토익 성적 올리는데 올인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네.
또 직업을 선택할 때, 월급을 얼마 주는가 혹은 오래 일할 수 있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사실이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자기 책임 하에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회사, 능력만 보이면 얼마든지 큰 일을 맡을 수 있는 회사가 내공을 키우기에 좋은 회사라는 사실, 그리고 국내 시장만 쳐다보는 대기업 보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중소기업에서 훨씬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았으면 해.
자기 확신과 열정으로 준비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평생 공부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K군은 이미 체험하고 있지? 나한테 배운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일하면서 배울 것이라고 내가 말했었지? 그리고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습득해서 외연을 넓혀가야 하는 것 또한 잊지 말게나. 새로운 분야의 출발은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네.
K군, 자네가 노동 분야에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네. 이미 자네를 가르친 나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로펌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후배를 돕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기특하네. 제자 앞이라서 잘 표현 못했지만, 자네가 자랑스럽고 또 고맙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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