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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신택리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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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신택리지를 쓰다

입력
2011.01.1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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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다천 형께 주목에 새긴 묵직한 현판을 선물 받고, 좋은 현판이 생겼으니 집 한 채 잘 지어야겠다는 10년 꿈을 꾼다. 집 지으려면 땅이 있어야 하기에 틈이 나는 대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길지를 찾아다닌다. 나는 풍수(風水)를 모른다.

따뜻한 남쪽이 고향이며 현주소라는 조상들이 택한 최고의 명당이 아닌가 싶다. 밀양에 묻히신 8대조 이래 할아버지들께서 그 가난에도 식속들 이끌고 만주로, 서울로 이주하지 않으셔 그 후손들 대부분 북위 35도 아래 남쪽지방에 뿌리 내려 큰 추위를 겪지 않고 살았다. 물난리, 불난리 겪은 집안도 없다.

나는 젊어 역마살이 있어 내 손으로 내 집 한 번 지어보지 못했지만, 요즘 내가 세운 계획은 내 손자손녀들이 태어나면 냉·난방비 걱정 없이 살 집 하나 지어놓는 일이다. 나무장작을 때는 황토방 하나쯤은 필수이고, 나는 스피노자처럼 집 주위로 나무를 심을 것이다. 세상사는 일, 춥고 덥지 않고 물난리 불난리 없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것을 집 하나로 가르칠 것이다.

지구의 일을 예측하지 못하지만 지금 지구는 막장으로 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겨울은 혹한에, 여름은 열대야에 우리는 쉼 없이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기상이변이 남의 일이 아니다. 곧 내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나만의 '신택리지(新擇里志)'를 쓰기 시작했다. 거창하지만, 후손을 위해.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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