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프랑스 정치인이자 미식가로 유명했던 찰스 모리스 드 탈레랑이 커피에 바친 예찬이다. 커피 마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극찬이다. 그런데 지난 12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의 커피제조공장에서 김광림(58ㆍ㈜토나 대표이사)씨를 만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4년 전인 2007년 8월,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 다국적 커피전문점이 장악하고 있는 커피시장에 ‘토나(TONA) 커피’라는 고유 상표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인도네시아 슬라베시와 수마트라 등 최적의 커피 농원에서 자란 커피열매를 계약재배를 통해 확보해 커피의 모든 제작과정, 즉 과육제거-씨앗건조-피막 제거(헐링)-생두(Green beans)건조ㆍ선별-포장공급-배전(焙煎ㆍroasting)-블렌딩까지 관여하는 ‘포괄적 전문가(Comprehensive expert)’다. 국내에 커피를 만드는 커피 바리스타(커피 조리사ㆍ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란 뜻)는 많지만, 품종 선별부터 블렌딩까지 커피 제조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전방위적인 커피 전문가는 그가 국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잘나가는 사업가, 커피를 만나다
김 대표는 서울에서 고교를 마치고, 1979년 미국 유학을 떠나 인디애나주 명문 주립 퍼듀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그 뒤 보스턴의‘존행콕(John Hancock)투자보험사’에 입사해 10여 년 동안 숫자와 씨름했다. 하지만 금융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시픽 넥서스 네트워크(Pacific Nexus Network)’라는 회사를 설립해 중장비 부품 무역을 시작했다. 1990년대 이 사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온두라스ㆍ콜롬비아ㆍ엘살바도르 등 중남미지역까지 전 세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렇게 전 세계를 돌면서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떴다. 커피였다. 그리고 ‘커피사업이 중장비 부품사업보다 비전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2000년의 일이었다.
그는 한창 잘나가던 사업을 미련 없이 접고 세계에서 커피나무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들어가 커피수업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제2 도시인 수라바야에 있는 커피회사 ‘아네카’에서 국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시장의 메커니즘과 제조공정 등을 배웠다. 최고급 플랜테이션 커피를 생산하는 수마트라의 유명 농원도 방문하고, 커피나무 재배법부터 상품화된 원두를 만들어내기까지 모든 과정을 배우고 익혔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커피를 직접 보고 맛보기 위해 중남미의 커피 산지와 하와이 코나 등 유명한 커피 산지는 모조리 찾아 다녔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안정적 사업을 접고 앞날이 불투명한 인생 제2막을 시작한 것이다.
쓴 맛 나면 커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5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때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100년이 훌쩍 넘긴 지금, 100원짜리 커피믹스부터 한 잔에 4만원이 넘는 루왁 커피까지 다양한 커피가 우리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연간 11만톤의 커피를 수입하고 있고, 국민 1인 당 1년에 350잔의 커피를 마신다. 기업형 커피 전문점 체인만 해도 3,000개 넘게 성업 중이다.
“커피는 개인의 상상력과 사교를 풍부하게 해주는 필수 촉매제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8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나타난 이슬람 신비주의 집단인 수피교도에서 시작됐습니다. 밤을 새워 명상을 하는 수행에 커피의 각성효과가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성을 중요시한 유럽에서 상인들이 커피를 ‘이성을 각성시키는 음료’라고 홍보하면서 세계화가 시작됐지요.”
커피가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은 지금도, 커피의 맛을 ‘쓰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쓴 맛을 피하기 위해 설탕과 크림으로 범벅을 만들어 마시는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좋은 원료를 가지고 제대로 만든 커피는 절대 쓰지 않다”며 “쓴 맛이 난다면 대량 생산으로 신선도가 떨어지고 산화(酸化)된 저급한 커피라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커피는 원래 단맛과 산미(酸味), 떫은 맛, 오래 남는 뒷맛 등 다양한 맛을 내지만 절대 쓴 맛은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문제 되고 있는 커피 원가에 대해선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커피 종류가 워낙 다양해 단순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비싼 커피가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선입견에는 일침을 가했다. “이탈리아산 등 유럽산이 최고급이라는 맹목적인 문화 사대주의에 의존해 커피를 선택하지 말고, 자신의 혀와 코로 커피 고유의 맛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맞는 커피를 고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토나 커피’는 지금까지 70여 커피 전문점과 음식점 등을 통해 소리 없이 판로를 넓히고 있다. 그가 생산ㆍ판매하는 커피는 연간 약 10톤 정도. 하지만 점차 매출도 늘고 있고, 올해에는 토나 커피만 파는 전문점도 낼 계획이다. 김 대표의 최종 목표는 네슬레나 스타벅스, 커피빈 같은 세계 거대자본이 만든 커피가 아닌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우리 상표의 커피를 가지고 세계시장에서 겨루는 일이다. 진하고 뜨거운 그의 커피 사랑이 40대 같은 얼굴을 간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김광림 대표가 말하는 ‘커피 맛있게 마시는 법’
커피가 지닌 맛과 향 성분은 600~800가지에 이른다. 그런 만큼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김광림 대표이사는 “커피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끼려면 좋은 커피를 골라 우유나 크림을 타지 않는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맛이 좋은 커피로는 만데린(인도네시아), 케냐, 과테말라 커피가, 향이 좋은 커피로는 블루마운틴(자메이카), 코나(하와이) 커피가 꼽힌다고 한다.
커피의 맛을 제대로 내려면 핸드드립해서 마시는 커피를 들었다. 기계로 높은 압력을 가해 수십 초 만에 커피 성분을 뽑아내는 에스프레소가 ‘패스트 커피’라면 핸드드립 커피는 말 그대로 손으로 주전자 물을 부어 추출해 마시는 ‘슬로 커피’다. 핸드드립 커피는 커피 품종이나 볶는 정도뿐만 아니라 분쇄 정도, 물의 온도와 따르는 방법, 드리퍼(커피를 거르는 용기)의 종류 등에 따라 저마다 다른 맛이 난다.
물론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우유를 적당히 곁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이고, 우유를 곁들이는 것은 이보다 조금 뒤의 일이다. 그 전에는 시나몬ㆍ클로버(정향유)ㆍ머스터드(양요리에 쓰는 겨자) 등을 타서 마시기도 했다.
김 대표는 식후에 마시는 커피로 데미타스 커피가 좋다고 소개했다. 커피를 에스프레소로 추출한 다음 더운 물을 반쯤 타는 진한 커피다. 일반 커피 잔보다 조금 작은 데미타스 컵에 넣어 마시면 특별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아침에 마시는 모닝커피로는 프랑스의 카페오레가 좋다고 한다. 우유를 많이 넣어 대형 컵이나 작은 대접(보울)에 마신다.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커피믹스도 먹는 법이 있다. 팔팔 끓기 시작한 물에 바로 커피를 타지 말고 93~95도 정도로 식힌 다음 커피를 넣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너무 뜨거운 물은 커피 속의 카페인을 변질시켜 쓴 맛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커피믹스 1개에 적당한 물의 약은 90㎖로 종이컵 용량이 195㎖이므로 커피믹스 1봉지에 종이컵 딱 절반 정도 물을 채우는 것이 적당하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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