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집요한 인파이팅 식 대화공세에 정부가 계속 백 스텝을 밟다가 역공의 펀치를 날렸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추가도발 방지 확약, 비핵화 진정성 확인 등을 위한 남북 당국간 만남을 갖자는 역제의였다.
하지만 북측은 어제 이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 없이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 및 개성공단 실무회담 개최와 개성 남북경협협의사무소 정상화를 촉구하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우리 정부의 역공이 북측의 대화 공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북 기피보다 주도방법 찾아야
정부의 역제의는 다분히 북측의 파상적 대화 공세를 비껴가기 위한 방어적 제스처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 점에서 전혀 개의치 않고 대화공세를 계속하는 북측의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기도 하다. 남북간에 접점 없는 공허한 신경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물론 정부의 역제의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당초 입장에서는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두루미 손님에게 접시에 담은 스프를 내밀고서 일이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남북관계에서 대화 요구를 수용하면 양보나 패배를 하는 것처럼 여기는 속 좁은 생각이 문제다. 남북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고도 북한과의 대화를 기피하거나 내키지 않아하는 태도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북한 주요통계지표'에 따르면 2009년 남북의 경제력 격차는 37.4 대 1로 벌어졌다. 북한의 경제력을 모두 합쳐도 광주광역시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력 차가 100배 이상이라는 연구도 있다. 북한이 핵과 특수전 전력 등 비대칭 전력으로 남한을 위협한다고 하지만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계가 있다. 우리 정부가 보다 자신감을 갖고 대화든 협상이든 북한과의 게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여건은 충분하다.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에 목을 매는 지금은 우리 정부가 하기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도 남북대화를 강력히 촉구하며 한반도 정세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일본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의지를 거듭 밝히는 등 이전과는 달리 매우 적극적인 자세다. 이 국가들이 6자회담 재개의 가장 중요한 전제로 남북관계 개선을 꼽는 데 이견이 없는 만큼, 상황 변화의 주도권은 우리 정부가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의 파상적인 대화 공세에 뒷걸음질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 미국이 함께 압력을 행사해 북한 정도의 나라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국제시스템이라고 말하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한탄한 일이 있다. GDP(국민총생산) 규모나 군사력 등에서 세계 1, 2위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 세계 최강대국들이 모여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인 북한 하나를 다루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국가들이 협력하면 북한이 놀아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일 수밖에 없는 틀을 만들 수 있다. 성기지만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천라지망(天羅地網)에 북한을 가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진정성만 따지다간 늘 제자리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장외에 머물기를 고집하면 그런 틀로 끌어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대화의 장으로 들어오겠다고 안달하는 상황이다. 북한의 의도에 진정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회피하고, 3대세습 체제 조기안정을 위한 일시적 모면책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단 북한이 대화의 틀에 복귀하면 북한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 과거 6자회담 공과를 거울 삼아 5 대 1의 구도에 북한을 엮어 넣는다면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정부는 이제 진정성 타령을 거두고 재개된 대화 틀에서 5 대 1의 구도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때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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