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재판이 갈수록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검찰에서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줬다고 했다가 지난해 12월 공판에서 "지어낸 얘기"라며 부인했던 한만호(50ㆍ수감 중) 전 한신건영 대표와, 한씨의 법정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검찰이 신청한 증인들이 서로 공방을 벌이면서 진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새벽 3시에 끝난 4차 공판에서는 한씨가 한신건영 박모 부사장과 일산 H교회 장로 김모씨에게 줬다는 5억원의 실체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우선 박씨와 김씨에게 성과급으로 5억원을 줬다고 했던 한씨가 4차 공판에서 돌연 "사실은 '로비용 실탄자금'으로 줬는데, 최종 종착역은 모른다"고 돈의 성격에 대해 종전과 다른 진술을 했다. 박씨와 김씨는 한씨의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5억원을 받은 사실도 없을뿐더러 로비자금으로 받은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공판 과정에서 박씨와 김씨는 한씨로부터 로비가 아닌 다른 명목으로 각각 1억원, 2억2,000만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이로 볼 때 한씨와, 박씨 김씨 간에 추가로 돈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 전 총리 측이 박씨와 김씨에 대해서는 검찰이 계좌추적을 하지 않은 상태라며 맞서고 있는 것은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핵심 물증인 한신건영 채권회수목록의 증거능력은 이번 공판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채권회수목록에 기재된 '의원 5억원' 표기를 근거로, 한씨와 가까운 한 전 총리에게 5억원이 건너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씨는 "부도 후 돈을 찾기 위해 직원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목록에 불과하다"고 버티고 있다.
문제는 채권회수목록에 대해 증거로서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씨와 반대쪽에 서 있는 박씨조차도 4차 공판에서 채권회수목록과 관련해 "내가 돈을 받은 걸로 잘못 기재된 부분이 있어 경리부장에게 이의를 제기해 삭제시켰다"고 증언했다. 채권회수목록을 직접 작성한 한신건영 경리부장 정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하는 17일 5차 공판에서 어느 정도 갈피가 잡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박씨와 김씨, 그리고 한씨의 운전기사였던 김모씨의 법정 증언이 재판부의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일단 이들 세 사람 모두 검찰 신문에서는 "한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뒤이은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선 이들도 곳곳에서 자신의 종전 진술을 뒤집거나 "기억의 혼선이 있는 것 같다"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H교회 장로 김씨는 당초 검찰 조사에서 "교회 신축 건은 한신건영의 수주 가능성이 높았다"며 "내가 내부적으로 협조했고 한 전 총리도 외부에서 신경을 써 줘 잘 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한신건영의 수주 가능성은 10% 정도였고, 나는 수주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한씨의 운전기사 김모씨도 '2007년 4월쯤 돈이 든 여행가방을 경리부장에게서 받아 1001호 사무실에 보관해뒀다가 박씨와 김씨에게 성과급으로 줬다'는 한씨의 진술에 대해 "당시에 1001호 사무실은 오픈하지도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가, 변호인측이 그 무렵 1001호에 배달된 물품배송증을 제시하자 말을 흐렸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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