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개봉 예정인 스릴러 ‘화이트’는 걸그룹이 소재다. 15년 전 노래를 리메이크해 인기를 얻은 걸그룹 멤버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한다. 걸그룹이 주인공인만큼 인기 걸그룹 티아라의 멤버 함은정 등이 주연을 맡았다. 독립영화 ‘고갈’과 ‘방독피’ 등으로 실험적 영상을 선보인 김곡 김선 형제 감독이 현장을 지휘했다.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이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점도 화제지만 무엇보다 대중문화의 총아로 떠오른 아이돌을 소재로 삼아 충무로의 눈길을 끌었다.
충무로 아이돌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2007)처럼 아이돌을 단순 캐스팅해 젊은 관객층을 공략하던 평면적 전략에서 벗어나 아예 아이돌을 소재로 새로운 영역 개척에 나서고 있다. 아이돌에 대한, 아이돌에 의한 영화들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4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제작 추진 중인 ‘플라잉 걸즈’(가제)는 멤버들 간 불협화음으로 해체 직전까지 가는 걸그룹의 성장담을 웃음과 감동으로 전하려 한다. 아이돌을 이용한 쇼 비즈니스의 이면도 들여다보게 될 이 영화는 유명 걸그룹 멤버의 캐스팅을 거의 확정했다. 올 여름 개봉할 ‘해피 투게더’(가제)는 보이그룹의 무대 뒤 일상을 통해 아이돌의 삶을 이야기한다. ‘바르게 살자’(2007)의 라희찬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2PM의 전 멤버 박재범과 지현우 박시연이 출연한다.
충무로가 영화 소재로 아이돌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10대나 20대 초반이 주류였던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소비층이 중ㆍ장년층까지 확대되며 아이돌 팬덤이 보편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 개봉이 목표인 휴먼 드라마 ‘오빠’는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오빠와 여동생이 노래를 통해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내용의 이 영화 여주인공은 걸그룹의 옛 멤버로 그려진다. ‘오빠’의 제작사 주피터필름의 주필호 대표는 “영화 속 주인공 직업은 대중들이 좋아하고 공감하는 직업군에서 찾기 마련이다.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걸그룹을 소재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팝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투자와 수출을 생각했을 때 아이돌그룹이란 소재와 실제 아이돌의 출연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플라잉 걸즈’의 제작 관계자는 “K-팝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실제 아이돌의 캐스팅은 필수다. 그렇지 않고선 자본을 끌어 모으기 쉽지 않고 제작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말했다. ‘화이트’도 일본 등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아이돌은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 면에서도 잠재력이 크다. 영화를 통해 새로운 인기 걸그룹이나 보이그룹을 만들어내고 음반 판매 수익을 노릴 수 있는 점도 사업적 매력으로 꼽힌다.
딜레마도 있다. 영화 완성도와 관계없이 아이돌을 앞세워 만든 그저 그런 기획상품으로 취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주니어 멤버들을 출연시켰으나 소수 팬들 위주로 소비된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의 전철이 밟을 수 있다는 우려는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플라잉 걸즈’의 관계자는 “흥행을 위해선 아이돌을 전면으로 내세워선 안 된다. 자칫하면 뮤직비디오 장사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필호 대표는 “아이돌 캐릭터만 보이지 않고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하는 게 결국 흥행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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