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반발무마 등 난제 첩첩"고소득 피부양자 건보혜택 축소땐 가능" 주장에"3년 후 건보료 3배 증가 추산" 반론 만만찮아"의료쇼핑 급증할 것" "적정성 심사로 차단" 양론포괄수가·총액예산제 도입 문제도 쟁점 예고
'개인당 1만1,000원만 더 내면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진료비의 90%를 해결하는 사실상의 무상의료가 가능해진다.' 지난해 이런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하나로시민회의운동에 이어, 연초 제1야당인 민주당이 90% 무상의료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유럽선진국형 의료시스템 도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재정여건을 무시한 인기몰이식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여론도 거세 향후 사회적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과연 80~90% 무상의료는 무리한 목표인가.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행 조건은 무엇인가. 쟁점별로 살펴봤다.
예산 확충은 가능한가
무상의료는 무상급식과 달리 투입예산을 쉽게 확정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찬반 논란이 증폭되는 측면이 있는데, 민주당은 일단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용역 보고서 등을 토대로 현재 60%대인 건강보험 보장비율을 90%대로 올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연간 약 8조1,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 기반을 현재 근로소득에서 종합소득으로 확대하고, 고소득 피부양자 보험 혜택을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규식 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이 최근 대한병원협회에 제출한 검토안에는 민주당 방안대로 90% 무상의료를 2015년까지 달성하려면, 2015년에는 건보료가 2009년보다 3배 오른다고 추산했다. 이 원장은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며 내부용으로 만든 초기단계 자료"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현재 비용추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적정예산 논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의료쇼핑' 늘어날까
예산 추산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사실상의 공짜진료가 가능해지면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허수(虛數) 환자가 늘어 건강보험 재정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규식 원장은 "의료가격이 10% 하락하면, 수요가 2.8%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2006, 2007년 실시했던 6세 미만 아동 무상 입원진료비 지원이 폐지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의 입장은 다르다. 무상의료의 목표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병원을 다닐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증가 수치도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6세 미만 아동 무상 입원진료비 지원이 이루어졌을 때 진료비 증가율은 평년보다 약 10%포인트 높아졌다. 예컨대 2004년 진료비는 전년보다 4% 늘었으나, 이 제도가 시행된 2006년에는 전년보다 15% 가량 늘었다. 공단 측은 "설령 건강의심증을 가진 환자가 진료쇼핑에 나서더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후 적정성을 판단하고 보험혜택을 주지 않는다"며 허수환자가 공단재정을 축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가구의 18%가 의료비 부담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때문에 무상의료 확대로 인한 환자 증가를 전적으로 의료쇼핑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료제도 개편 반발 극복이 과제
80~90% 무상의료안이 테이블 위에 오르면 건강보험공단의 오랜 숙원사업이자 의료계의 큰 논쟁거리인 제도개선 사안들이 줄줄이 함께 테이블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건보공단측은 "무상의료안을 꼭 포퓰리즘으로 볼 수는 없으며 80% 무상의료 정도는 적절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몇 가지 전제를 달았다. 민주당 방안에도 포함돼 있는 것들이다. 우선 현재 개별 진료행위별로 수가를 계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질병별로 수가를 계산하는 유럽형 '포괄수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맹장염 등 20개 질병에서 포괄수가제가 시범 실시되고 있다. 공단측은 "행위별 수가제 체제로 무상의료를 추진하면 수입을 늘리려는 병원과 의사들 때문에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결국 포퓰리즘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한해 지급될 건강보험비용을 미리 확정해서 병원들이 알아서 진료를 조정하도록 하는 '총액예산제', 불필요한 중복진료를 줄일 수 있는 '주치의제' 도입 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단측은 "의사의 수입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행위별수가제가 주를 이루는 곳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대한의사협회 이혁 보험이사는 "총액예산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한해 할당액을 가을에 다 써버려서 겨울에 문을 닫는 병원들까지 생긴다. 주치의 제도도 한국의 전문의 제도가 가진 장점을 오히려 없애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무상의료는 의료체계 전반을 개편하고 반대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력과 추진력이 뒷받침 될 때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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