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모기향 때문에 수십 명 아이들이 화마 속에 사그라졌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31년 동안 화재와 뺑소니사고 감식을 해오다 지난달 31일 정년 퇴임한 김윤회(60ㆍ사진)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안전사고조사TF팀장은 1999년 유치원생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가 가장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다.
당시 김씨는 화재의 참담한 현장을 샅샅이 훑었다. 아이들이 원혼이라고 풀어주기 위해, 현장에 살다시피 하며 매달렸다. 전기합선이 화재를 불렀다는 언론들의 추측보도가 잇따랐지만 김씨의 최종 결론은 모기향. 유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제가 유족이었더라도 모기향 때문에 자식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또 다른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김씨가 국과수에 몸담기 시작한 1970년 대 후반은 소위 '과학수사'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때. 김씨는 1985년 우리나라 국과수에 해당하는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에서 연수를 하며 과학수사 기법을 도입했다. 연수 직후 국내 처음으로 화재 현장에 나가 사고를 조사한 뒤, 화재과정을 재구성한 감정서를 제출해 국내 1호 화재감식요원으로도 불린다. "그때만 해도 골치 아픈 일인데 현장까지 갈 이유가 뭐 있냐고 동료들이 말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화재감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였죠."
국과수에 재직한 동안 김씨가 현장감식에 나선 화재는 2,000건이 넘는다. 김씨의 임무는 연소 흔적을 따라가며 무엇이 불을 냈고, 왜 불이 났는지 역추적하는 작업. "경찰이 넘겨준 증거물 하나만 갖고 방화여부를 조사 하려니 답답했죠. 그런데 현장을 찾아갔더니 답이 단번에 나오더군요." 그때부터 김씨는 굵직한 대형사고가 터지면 연구실을 나와 무조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씨랜드청소년수련원을 비롯,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인천 호프집 화재, 이천 냉동창고 화재,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 등이 모두 김씨가 화재 원인을 밝혀낸 사건들이다.
20여 년간 화재감식을 전담했던 김씨는 이후 국과수의 난해한 뺑소니사고를 도맡았다. "한번은 초등학생이 집 앞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 목격자도 하나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죠. 며칠간 현장을 헤매다 아이 옷에 묻은 바퀴자국과 페인트 재질을 분석해 결국 뺑소니 범인을 잡기도 했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재와 먼지를 뒤집어쓴 탓에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는 김씨는 국민들이 안전의식을 신신당부했다. "끔찍한 대형사고를 돌아보면 안이한 마음가짐이 언제나 큰 화를 불러왔습니다. 안전의식이야 말로 대형사고를 막는 지름길입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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