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말기에도 꼭 이랬다. 코드인사, 회전문 인사로 민심을 거스르더니 이른바 '오일게이트''행담도 개발' 등 부패스캔들이 터지면서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퇴임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도 비슷한 모양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사퇴를 둘러싼 당청 갈등과 '함바집게이트'를 보면서 국민들은 "아, 이 정권도 끝났구나"하고 직감한다. 누가 알려줘서가 아니라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민초들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안다. 다른 게 있다면 레임덕이 다른 정권보다 조금 빨리 왔다는 것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지 만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는 마이웨이 인사
이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도덕 불감증 인사에 국민들은 거의 포기 상태다. 취임 초기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하는 인사 파동으로 속을 뒤집어 놓더니 잠시 달라지는가 했는데 다시 천성관, 김태호, 신재민, 이재훈, 정동기 등 부도덕한 인물들을 앉히려다 잇따라 낭패를 봤다.
사실 이번 인사에서 측근을 행정부에 독립적이어야 할 감사원장에 내정한 게 문제의 출발이지만 웬만하면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노무현 정권 초기 힘이 막강하던 시절에도 감사원장 후보자였던 윤성식 교수가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부결시켰던 것에 비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워낙 엄청난 인사 파동이 많았던 터라 그 정도로는 명함조차 못 내민다고 애써 위안했던 거다. 그런데 웬걸. 전관예우 논란에 각종 재산상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니 도저히 감당이 안될 정도가 됐다. "이게 공정사회냐"는 민심이 들끓는 것을 뒤늦게 감지한 한나라당이 4월 재보선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재빨리 선수를 쳤는데 청와대는 그것도 고까운지 지들만 살자는 거냐고 노발대발한다.
후폭풍이 일자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인책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이 대통령에게 있다. 물론 졸속 검증과정과 직언을 하지 못한 참모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도덕성과 자질, 여론을 무시한 이 대통령의 마이웨이식 인사관이 바뀌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대통령이 일단 "내가 쓰겠다"고 하는 판에 어느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충성도 위주의 측근 중용과 연고주의에 기댄 이 대통령의 인사방식 앞에서 검증 시스템과 잣대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고교 후배이자 동향인 사람을 육군참모총장에 앉히고는"이번 인사는 가장 공정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이다. 이로써 육해공군 총장을 모조리 특정지역 인사들이 독식했으니 이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군 내에서 "유능한 장군이 경상도 출신밖에 없느냐""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만두라는 거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가뜩이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뒤숭숭한 군을 화합시키고 단결시키기는커녕 쓸데없이 불을 지른 격이다.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보면 여전히 기업체 CEO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CEO 입장에서야 약간의 흠결이 있는 직원이라도 일만 잘하면 그만인지 몰라도 정부는 일개 기업이 아니지 않는가. 일의 효율보다는 과정과 절차가 훨씬 더 중시되는 게 국가요 정부라는 조직인 것이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을 이런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마인드조차 왜 바꾸질 못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말로만 친서민, 공정사회라니
장하준 교수의 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가 여러 달에 걸쳐 베스트셀러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진실과 정의를 향한 목마름이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은 권력과 기득권층을 믿지 않는다. 겉으로는 친서민이니, 공정사회니 하지만 실상을 보면 이렇듯 자기들끼리 밀고 당기고 챙기는 그들만의 행태에 서민들은 신물이 나는 것이다. 먹고 사는 일만 생각하기에도 국민들은 피곤하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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