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호프(사진)는 유머와 독설로 삶의 정곡을 찌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핵심을 꿰뚫는 대사,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 주는 해학, 상황의 반전 등 특유의 전개 방식에 연극인들은 무대화의 유혹을 강하게 받아 왔다. 레오니드 쉬흐마토프 등 2명의 러시아 배우 출신의 연극학자는 20세기 중반 체호프의 대본화 작업으로 그 같은 욕구에 답했다. 그리고 이들이 교수로 재직한 보리스푸슈킨연극대에서 100여년 동안 실제 상연돼 오고 있다. 체호프 희곡집의 전사(前史)다.
그 책의 국역본이 ‘체호프 단편을 무대에 올리다’다(인디북 발행). 체호프의 소설 23편을 대본으로 만나는 것이다. 특히 그 중 ‘베로츠카’ ‘주머니 속의 송곳’ 등 두 편을 뺀다면 모두 국내 첫 소개되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책은 보다 온전한 체호프에 다가서는 통로다.
이들 잊혀진 대본이 한국에까지 와 닿게 된 것은 고리키문학대 한러문화연구원장 박정곤씨가 모스크바 시내 한 서점에서 ‘체호프 상연화 모음집’을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다. 박씨는 ‘역자의 말’에서 “국내 발표되지 않았던 체호프의 작품을 상연에 적합하도록 개작해 연극 전공자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며 “일반인들에게는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체호프 단편의 묘미를 새롭게 만끽할 기회”라고 밝혔다.
현대 한국 문학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처럼 막힘이 없는 유려한 번역문은 박씨가 통역 전공자여서 구어에 능한 덕택이다. 본격 번역 전 그는 원저작권자인 보리스푸슈킨연극대 교수 안나 부르수르의 번역 동의를 얻었다.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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