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최선을 향해 부단히 업그레이드되는 생명체다. 재탕 삼탕이 아닌 한 오늘의 공연은 새로운 걸작을 향한 디딤대다. 무대를 진짜 무대답게 하는 비밀이다.
한국대학연극학과교수협의회(회장 이송 청운대 교수)가 2009년 시작한 ‘창작희곡작품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희곡 가운데 될성부른 것을 솎아 내고 거름을 줘 가며 배양, 일반과 만나게 하는 마당이다.
“희곡 장르는 시작부터 끝까지 시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갖추지 않으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료가 좋은데도 부분적으로 결함이 있어 가려진 것, 죽어 가는 것이 많은데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심사위원장인 숭실대 이반 교수의 말은 이 시대 이들의 소명을 선명히 드러낸다.
7월 이 교수 등 5명의 심사위원단이 이 프로그램에 접수된 총 47편의 응모작 중 실제 상연의 기회를 누릴 5편의 작품을 선정한 것으로 무대는 배태했다. 이어 8~10월 작가와 교수 등 전문가와의 1대 1 밀착 작업으로 희곡 수정을 거쳤고 11월에는 학술세미나 등 양성(튜터링)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곤 낭독회와 단행본 발간 등을 거친 뒤 작품마다 무료 공연까지 마쳤다.
이 교수가 말했던 ‘특권’을 누린 작품은 박진희씨의 ‘슬푸다. 이도 꿈인가 하니’ 등 모두 5편이다. 특히 ‘이봐요’의 경우 지난해 탈락됐으나 수정 작업을 거쳐 다시 출품돼 상연의 기회를 얻게 됐다. 이들 작품은 15일 청운예술극장에서의 최종 무대 평가를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올해 1월 9일까지 가졌던 무료 공연에 이은 마지막 단계다.
남산예술센터도 비슷한 일을 한다. ‘2010 대학로 우수작품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를 통해 대학로에서 산발적으로 공연됐던 연극 가운데 좋은 작품을 선정해 예술센터 중극장에서 차례로 선보이는 것. 지난 3년간 대학로에서 공연됐던 작품 중 4차례 심사를 통과한 극단 드림플레이의 ‘장석조네 사람들’,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 극단 여행자의 ‘상사몽’ 등 세 작품이 업그레이드의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2월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서 초연, 5월 연우무대 재공연 등으로 관객들과 만났던 ‘장석조네 사람들’은 현재 3시간 동안 14명의 배우들이 29가지 역할을 소화하는 생동감의 무대에 도달해 있다. 이번에 중극장 상연의 기회를 누리게 된 이 작품은 원작자 김소진씨가 선사한 사투리의 향연을 더욱 풍성히 빚어 올리는 데 전념하고 있다. 특히 소설에 가득한 이북 방언을 보다 생생히 구현하기 위해 특강 등 극장 측이 펼쳐 온 진지한 접근의 결과가 어떤 무대로 귀결될지 관심이다. 연출 김재엽씨. 21일~2월 6일.
미국 극작가 라본느 뮐러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참혹한 진실에 접한 뒤 충격받아 쓴 ‘특급호텔’은 이번 무대에서 객관적 거리 두기라는 연극적 장치를 거친다. 연출 박정의씨. 2월 25일~3월 6일.
바로크 음악과 현대적 무대 장치로 고전 소설 ‘운영전’을 재해석, 사랑의 광기를 그린 ‘상사몽’은 국악과 서구 문화를 융합시킨 무대가 더욱 무르익었다. 연출 양정웅씨. 3월 12~20일.(02)758_2000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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