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정치권 일각에서 헌법 개정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광복절 연설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여기에 2009년에는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개헌안을 내놓았고, 여야 국회의원 186명으로 구성된 미래한국헌법연구회도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민과 언론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 안돼
현행 헌법은 20년이 넘은 헌정 사상 최장수 헌법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권력과 국민생활을 규율하는 생활규범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 및 헌법재판제도를 도입해 민주화를 정착시켰고, 평화적 정권교체와 헌법소원을 통한 기본권의 절차적 보장을 확립해 중요한 정치적 쟁점마다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1987년 국민의 대통령 직선 열망과 정치상황을 반영한 현행 헌법은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국민 중심의 헌법으로 도약하기 위해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개헌의 필요성이 성숙했다는 사실과 개헌의 당위성은 별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9차례의 개헌은 주로 정치적 격변이나 집권자의 임기 연장을 위해 비정상적 상황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국가 정체성과 기본권 등이 총체적으로 검토되지 못했다. 또 정치권 중심으로 추진돼 국민적 참여가 부족했다. 심지어 국민적 저항의 후유증을 남긴 적도 여러 차례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평상시에 개헌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평상시라는 것은 국가 권력구조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사회적 절실함이나 시급함에 대한 공감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개헌의 필요성이 자주 제기되는데도 불구하고 논의가 탄력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절실함과 시급함의 결여라는 상황적 요인과 깊이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현재 개헌 논의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헌법 개정안이 발의돼 대통령이 개정안을 공고하게 되면 수정이 불가능하고, 가부만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개헌안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충분한 의견 수렴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국민 사이에 개헌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마당에 권력구조의 대대적 개편을 시도하기는 적잖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 논의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새 대통령 임기 중에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민이 개헌 주체로 참여해야
굳이 현 정부 임기 중에 개헌을 하려고 한다면,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국민 기본권의 강화, 사회 통합과 국가 정체성 강화를 위한 개헌과 더불어 현행 대통령제를 일부 개편하는 성격의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도입하는 개헌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0년의 우리 헌정사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이 진정한 개헌의 주체로서 주도적 역할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룩된 지금은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의 개정은 국회나 정치권 중심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명실상부한 헌법개정권력으로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정하고 개헌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개헌이 되어야만 한다. 현재 개헌 논의가 제대로 탄력을 받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국민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때문일 것이다.
심경수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