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도 못 막는 한글 열정… 버스타고 찾아와 "선생님~"
“개펄이 뭐에요?”
“음… 바닷가에 가면 진흙 같은 땅이 있지?”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본오동의 ‘본일 눈높이 러닝센터’. 한글 교재를 거침없이 읽어 내려가던 정아(13)가 눈을 들어 선생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교사는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바닷가를 묘사했다. “아! 검은색” 선생님이 웃으며 끄덕이는 것을 보고 정아는 다시 교재의 한글을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지문을 읽고 서너 개의 문제에 답하는 식으로 구성된 이 교재 한 권을 정아는 불과 40분만에 모두 풀어버렸다. 교사 민정실씨는 “이 한 권이 5일 분량인데 정아는 한번에 한 권을 마친다”며 “정아가 특히 다른 아이들보다 한글을 좋아해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한글을 막힘 없이 읽어낸다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정아에겐 남다른 사정이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정아가 한글을 배운지 이제 8개월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정아는 2008년까지 중국에서 살다가 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것을 걱정한 부모님의 배려로 정아는 한동안 중국인 학교를 다녔다. 한국의 초등학생이 된 건 이제 겨우 한 학기를 넘겼을 뿐이다.
걱정이 많았던 정아 부모님을 안심시킨 건 정아의 한글에 대한 열정과 눈높이 러닝센터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노력이었다. 지난해 5월 같은 다문화 가정 친구의 소개로 이곳 러닝센터에 등록한 정아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한글을 익혔다. ‘ㄱ, ㄴ’에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지, 나물’처럼 의미 단위로 한글을 배우는 요즘 학습법도 정아에겐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정아는 이번 학교 기말고사에서 국어 시험에서 85점을 받았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65점을 받았으니 일취월장한 셈이다.
“부모님이 반에서 마지막(꼴찌)만 아니면 된다고 했는데, 마지막이 아니라서 좋아요. 그래서 엄마가 (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달걀과 토마토 볶음 요리를 해줬어요.”
이 러닝센터에는 정아 말고도 대교 다문화가정 한글 교육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학생이 세 명 더 있다. 아이들은 다문화가정 학습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월 3만3,000원의 교육비 중 2만원을 감면 받는다. 덕분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쉽게 한글을 익히고 배울 수 있다.
정현숙 센터장은 “다문화가정 중에는 집안 형편이 어렵고, 학교 외에 별도의 한글 교육이 꼭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며 “이곳에서 배우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이사를 간 후에도 버스를 타고 찾아올 정도로 열정적으로 공부한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 13일 경기 시흥 대교HRD 연수원.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전국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들뜬 표정으로 연수원에 도착했다. 80여 다문화가정이 한자리에 모인 이날 행사는 정아처럼 대교 다문화가정 눈높이 국어 학습 지원을 받는 아이들의 가정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대교는 다문화가정의 한국사회 적응을 돕고, 행복한 가족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날 1박2일 캠프를 열었다.
TV에서 봐왔던 “1박~ 2일!”을 외치며 시작한 이날 행사는 ‘분위기 업! 레크리에이션’, ‘부모님과 함께 장래희망 알아보기’, ‘부모님을 위한 가족애 특강’ 등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 특강은 다문화가정 부모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단순히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녀 관계를 뜻했던 가족의 개념이 다문화가정, 입양가족, 한 부모가족, 기러기가족 등 다양한 형태와 의미로 변했다”며 “각 가정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우리 가족, 우리 부부에 맞는 가족 행복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특강을 듣는 동안 미래의 꿈을 담은 알록달록 가족 티셔츠를 만들었다. 이어 평범한 이주민에서 전문적인 문화예술가로 거듭난‘극단 샐러드’의 공연도 다문화가정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주 여성의 에피소드와 다문화 사회의 문제를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풀어낸 공연은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본 일처럼 여겨졌다.
필리핀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둔 동명(9)이는 “둘째 날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가족 운동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 신나게 대답했다.
대교 관계자는 “수 년간 다문화가정 어린이의 한글 학습을 지원해 오면서 다른 가정에 비해 가족간 소통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이 같은 캠프를 통해 다문화가정이 좀 더 행복해지고 사회 적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산=글ㆍ사진 강희경기자 kstar@hk.co.kr
■ 대교의 '다문화 가정지원'
대교는 사회공헌 활동에서도 교육기업의 특징을 살려왔다.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에도 ‘교육을 통한 나눔 실천’이라는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다문화가정의 결혼 이민 여성과 자녀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1회성 이벤트나 지원이 아닌 꾸준한 ‘교육의 기회’제공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은 2008년 말 대교문화재단의 ‘다문화가정 아이들 한글학습 지원 활동’에서 시작됐다. 대교는 매년 전국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 550명을 선정해 국어교육과 함께 일대일 멘토링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일대일 멘토링은 기존 유료 회원과 똑같이 일주일에 한 번 눈높이교사들이 다문화가정을 방문해 자녀를 지도하는 방식이다.
한글 무료학습 외에도 2009년부터는 전국 약 120여 개의 보건복지부 산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연계해 다문화가정에 도서 지원과 눈높이 한글교육을 지원해 왔다. 또 경기 안산의 본오 러닝센터 등 전국의 눈높이러닝센터에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두고 있다.
대교는 또 보건복지부 청년사업단 지원사업 중 하나인 해피캐어(Happy-Care) 서비스에 동참하고 있다. 이 서비스 프로그램은 충남 태안, 인천시와 연계해 해당 지자체 내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눈높이국어와 눈높이수학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여기에 결혼 이주민 여성들을 위한 멘토 상담 서비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체험학습 서비스도 대교의 몫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실시된 다문화 가정문화체험 학습은 태안의 변산반도 일대와 인천 도시축전, 과천 국립과학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이뤄졌다.
이 밖에도 다양한 지자체와 함께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덕분에 대교의 ‘특화된 다문화가족 관련 사업’을 통해 혜택을 받고 있는 수혜 아동은 전국적으로 약 1,500여 명에 이른다.
한편 다문화가정 외에도 사내 봉사단체인 눈높이사랑봉사단은 지난 2000년부터 자폐아동과 조손가정, 보육원 아동들에게도 무료학습 지원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박명규 대교 대표는“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교육’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일종의 재능기부”라며 “향후 한국사회의 적지 않은 부분을 담당하게 될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우리 문화를 잘 이해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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