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애리조나 총격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워싱턴 정가는 40여년만에 처음으로 현역의원을 노린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 개혁법으로 촉발된 극단적 파당정치, 분노를 부추기는 분열된 정치풍토가 이번 사건을 잉태했다는 개탄의 목소리도 나온다.
단독범행으로 가닥
용의자로 체포된 제러드 러프너(22)의 공범 여부를 수사중인 애리조나 당국은 9일 “러프너를 태워준 사람은 택시운전사로 관련이 없다”고 밝혀 러프너의 단독범 가능성이 커졌다. 범행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던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러프너 집의 금고에서 그의 서명과 함께 ‘나의 암살’ ‘나는 사전에 계획했다’ ‘기퍼즈’라고 쓴 봉투를 발견했다. 표적이 된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이 유권자와의 만남의 행사에 러프너가 참석한데 감사를 표하는 2007년 8월30일자 감사장도 발견됐다. 범행에 사용된 9mm 반자동권총은 한달 전 구입했다.
러프너가 백인우월단체와 연관됐을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반이민 성향의 ‘신세기재단’이 펴내는 잡지 ‘미국 르네상스’에 러프너가 여러 차례 인터넷에 올린 반정부, 반유대인 표현이 실린 것을 확인하고 이 단체를 주시하고 있다. 기퍼즈 의원은 애리조나 최초의 유대계 하원의원이다.
자성에 이어 또다시 독설 논쟁
애리조나 피마 카운티의 클레런스 듀프니크 보안관은 “최근 논쟁에서 오간 독설이 총격사건과 관련됐을지 모른다”며 분열된 정치판을 성토했다. 미 언론들은 이념이 다른 정치인을 ‘적’으로 간주, 제거 대상으로 삼는 폭력적 정치문화가 이번 사건의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정치판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이나 폭력을 부르는 맹목적 선동이 광범위하게 번져있다”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민주당 정치분석가 도나 브래질은 “폭력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의 비유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사건으로 정치판에서 일상화된 중상모략을 지양하고 단기적으로 자성과 함께 정치풍토 개선에 힘을 쓸 것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자성의 목소리는 총격사건의 원인을 놓고 금세 여야, 보혁 설전에 묻히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보수진영의 무책임한 발언이 이번 참사를 불렀다고 비난했으며, 좌파 웹사이트들은 범인을 ‘극우주의자’로 규정했다. 보수진영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대선 유세에서 “만일 공화당이 칼을 든다면 우리는 총을 들 것”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며 “독설의 원조는 민주당”이라고 맞대응하는 등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노골화하는 실정이다.
추모물결 잇따라
백악관과 하원은 이날 조기를 게양했다. 10일 오전 11시(미 동부시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미 전역에서 추모 묵념이 거행된다. 의회는 12일 상하원 합동회의를 열어 기퍼즈 의원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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