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수수료인하는 정부가 지난 해 ‘친서민정책’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이후, 금융권 최대현안이 되었다.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 등은 카드사들이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기면서도 수수료 인하에는 인색하다며 맹공을 퍼부었고, 카드사들은 결국 현금서비스 취급수수료 전면 폐지와 함께 영세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측의 공방은 올해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 관련 시민단체들은 “카드사의 수수료 인하가 생색내기에 불과하며 더 내려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카드사들은 “더 이상 내릴 여력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사실 카드사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연간 매출액 9,600만원 미만의 영세 가맹점에 대해 카드 수수료를 0.4~1.45%포인트나 낮췄고, 올해부터는 현금서비스 취급 수수료를 완전히 없앴다. 여기에 현금서비스 금리까지 2%포인트 내리고,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후속조치로 업종별 가맹점 수수료율을 처음으로 공시하기도 했다. 카드사들은 “금리나 수수료를 인하하는 것은 이제 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또다시 억지로 밀어부친다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측의 생각은 다르다. 시민단체들은 영세 가맹점들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상공인들의 70% 이상이 ‘수수료 인하로 경영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더구나 체크카드 수수료의 경우는 유럽국가들보다 최고 10배 이상 비싸다는 점을 들어, 인하 대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업계 자율적으로 내리지 않는다면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라도 낮춰야 한다고, 연일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수수료 추가 인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측(정미화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과 수수료 인하는 시장논리로 풀어야 한다며 신중해야 한다는 측(이보우 단국대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의 논리를 들어봤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 더 내릴 이유 있다
카드사들은 지난해 막대한 순이익을 올렸다. 하나SK카드를 제외한 5개 전업사의 작년 3분기까지 영업수익은 10조1,082억원에 달했고, 전업 카드사 6곳의 당기순이익은 1조3,904억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익 중 절반 이상을 수수료 수입에서 얻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과점적 시장구조 하에서 이렇게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 카드사들은 수수료 인하에 인색하다. 실제 지난 2005년 2.36%였던 수수료율은 2008년 2.22%로 겨우 0.14%포인트 내려가는 데 그쳤다. 특히 체크카드는 직불카드처럼 자금조달비용과 대손비용이 들어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료율이 1.85%에 이른다. 이는 0.2%수준인 벨기에나 스위스에 비해 10배 가량 높다. 미국도 체크카드 수수료율 만큼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인하가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카드결제 금액의 0.3~0.5%에 해당하는 은행결제 수수료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전업계 카드사들은 결제 수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고 있다.
또 우리나라 체크카드는 신용카드 결제망을 사용하고 있어,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수수료가 비슷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밴(VAN)사에 건당 150원 가량 정액방식으로 지급하는 수수료는 카드사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카드사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역만 공개할 뿐, 전체 원가 공개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도대체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길래 이 같이 높은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08년 5대 전업카드사의 체크카드 수수료 수입은 4,400억원에 달했는데, 신용카드사들이 은행이나 밴사에 지급한 돈은 1,000억원도 미치지 못했다. 조금만 순이익 규모를 줄여도 세계 최고 수준의 체크카드 수수료율은 지금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업계 스스로가 수수료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해 강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수수료 산출내역을 조사하고, 심지어 수수료율을 인하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카드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미국에서도 금융개혁법을 통해 직불카드 수수료에 연방준비제도(Fed)가 직접 손을 댈 수 있도록 했다. 호주 중앙은행은 마스터카드나 비자카드의 수수료를 인하하고 직불카드 역시 수수료를 낮출 것을 제안했다. 멕시코 중앙은행 또한 은행연합회와 함께 수수료 인하를 주도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주요 국가의 수수료율은 현재 1% 이내로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도 카드 수수료에 대해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인하를 검토해 보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수수료 인하는 단순히 카드사와 가맹점간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물가안정’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높은 카드 수수료는 결국 가맹점의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요율을 인하할 경우 물가 상승을 완화하는데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미화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 시장논리로 풀어야
신용카드 수수료인하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이 국내 체크카드 수수료 인하 폭을 당초 계획보다 더 확대할 필요하다는 뜻을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카드사 사이에서 당초 예상한 인하 폭은 0.2%~0.24%인데, 벌써부터 금융당국의 압력으로 0.5%까지 내릴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 문제는 정부의 개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가맹점 수수료를 보자. 원론적으로 가맹점수수료는 가맹점이 카드로 결제한 편익의 대가이며 가격이다. 따라서 수수료의 적정성 여부는 원가에 기초해야 한다.
소비자단체나 가맹점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 카드사들의 수수료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원가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에서 나온 잘못된 결론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 대부분은 가맹점에게 가맹점수수료 외에 결제시스템 구축, 거래내역서 발급이나 민원처리 등의 비용을 별도 수수료로 부과한다. 회원에게도 카드발급, 한도증액, 명세서 발급 등에 대해 별도 수수료 받는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일 수수료 체계여서 가맹점수수료 외에는 별도 수수료가 없다. 겉으로 드러난 수수료율이 높기는 하지만, 소비자가 실제 부담하는 수수료 비용은 다른 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체크카드의 경우 할인이나 적립혜택은 신용카드와 같이 제공이 되면서도 소액결제가 많고,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등 현금대출에 따르는 이자수익이 없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체크카드 수수료 수입을 더 낮추면 이익이 급감할 수 밖에 없다. 실제 체크카드 수수료를 현재보다 0.2%만 낮춰도 국내 전체 카드사의 연간 수익은 1,000억원이나 줄어든다.
물론 서민경제를 위해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수수료가 조금은 낮아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저금리로 카드사들이 돈을 빌리는 비용이 줄어든 만큼 인하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수료율 조정의 폭과 시기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먼저 수수료율 인하 폭은 시장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원가 경쟁력이 있는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간 경쟁을 통해 인하 폭이 결정돼야 한다. 인하도 한 번에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 수수료를 큰 폭으로 인하하면 당장의 효과는 클 지 모르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로 수익이 급감하면 카드 서비스를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특히 수수료 인하의 경우 전업계 카드사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 이들은 체크카드를 거래할 때 제휴은행에 계좌이용 수수료를 별도 지급하므로 수수료 수익이 은행계 카드사보다 더 많이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수수료 인하가 불가피하다면, 동시에 체크카드 거래에 따르는 밴(VAN)사 수수료나 은행수수료 등 프로세스 비용의 인하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업계 카드사들이 원가 보전 측면에서 가맹점에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새로운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회원에 대한 부가서비스 등 각종의 혜택을 줄이는 등 만만치 않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보우 단국대 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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