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천천히 지나가주세요. 아저씨들이 빨리 달리면 저희는 무서워요."
경기 오산시 오산동 버스터미널 앞을 지난 7일 지나던 운전자들은 여자아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색다른 경찰차를 발견하고 속도를 늦췄다. 지붕에는 경광등과 함께 스피커, LED전광판이 설치됐고 옆에는 '교통홍보방송차량'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시내를 돌며 안전운전 계도 방송을 하던 이색 경찰차가 오산시 원동 천일사거리 안전지대에 멈추자 화성동부경찰서의 '얼짱 여경'이 차에서 내렸다. 주인공은 김미진(29) 순경. 주행 중에는 미리 녹음한 방송을 틀지만 정차하거나 악천후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직접 생방송을 한다. 이번엔 김 순경의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신호대기 중이던 운전자와 보행자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김 순경은 전국 경찰관서에 한대뿐인 교통홍보방송차량을 운영하는 여경이다. 화성동부서가 지난해 8월 차량을 투입한 뒤부터 거리에서 시민과 소통하는 일이 주 업무가 됐다. 김 순경은 "처음에는 모두 쳐다보는 게 부끄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오히려 알아봐주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방송차량이 차츰 소문을 타며 이제 지역명물로 자리잡고 있지만 시작은 우울했다. 지난해 초 화성동부서 관내에서는 교통사고가 잇따르면 10여 명이 사망했다. 교통경찰들은 시내 곳곳에 대형간판을 설치하고 현수막을 붙이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사고는 줄어들지 않았다. '색다른 방법을 찾자'고 고민하던 때 김 순경이 이동식 홍보방송이란 아이디어를 냈다.
무릎을 탁 친 교통관리계 직원들은 서울 청계천변을 뒤져 쓸만한 방송세트를 구입한 뒤 뺑소니조사반 승합차에 설치했다. 뺑소니 사고는 대부분 심야에 발생하는 특성상 낮에 출동할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 순경은 "스피커가 달린 교회 차량을 보고 제안했는데 바로 채택돼 얼떨떨했다"며 "첫 시도인 만큼 관계법령을 일일이 확인하고 주택가에서는 음량을 줄이는 등 조심스럽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몸은 고돼졌다. 매일 출퇴근시간 주요교차로로 외근을 나가야 해 근무시간이 길어졌고, 주말과 휴일에도 각종 행사장에서 교통안전 홍보를 도맡았다. 초등학생 외에도 관내 교장, 모범운전자, 녹색어머니회 회원 등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목소리로 방송용 음성을 녹음했다. 김 순경은 "방송차량 운영 중에도 악의적인 교통법규 위반을 발견하면 철저히 단속하니 운전자들은 조심하라"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서내 다른 부서들의 차량 협조 요청이 부쩍 늘고 있다. 그래서 농촌마을 범죄예방, 공장밀집지역 안전관리 요령 등도 방송을 타고 있다. 서옥원 화성동부서 교통관리계장은 "지난해 교통사고가 전년에 비해 감소한 것이 전적으로 방송차량 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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