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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독감을 달팽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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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독감을 달팽이처럼

입력
2011.01.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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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일주일 째 독감과 싸우고 있다. 기침은 나를 얼마나 자지러지게 하는지 가슴속에서 텅- 텅- 울리는 소리가 난다. 몸이 텅 빈 소리통 같아 기침을 할 때마다 울림소리가 난다. 맙소사! 콧물은 또 얼마나 줄줄 쏟아져 내리는지. 내과에서 시작된 병이 이비인후과를 거쳐 폐렴증세까지 보여 오직 처방전에 의지할 뿐이다.

약은 얼마나 독한지. 식후 30분에 약을 먹고 나면 약에 취해 몇 시간씩 정신없이 잔다. 그 독한 증상 속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몸이 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말이 있다. 그 와중에도 신문을 읽고 편지를 쓰고 라디오를 듣는다.

단지 예전처럼 빠른 행동이 아니라 천천히 내 일을 즐긴다. 화를 내는 것도 무조건 금물이디. 화를 내 기관지를 바짝 긴장시켜 기침이 터지면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다. 뜨거운 물을 천천히 식혀 먹고 약도 한 알 두 알 헤아리며 먹는다. 죽 한 사발을 받아놓고도 숟가락을 저어 식혀 마신다. 당분간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새로운 약속을 잡지 않았다. 의사가 그랬다. 이번 독감 증상이 모두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데 치료하는 데 시간이 더욱 오래 걸린다고.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 문제다. 나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내 병 위를 기어가고 있다. 일어서기 위해 누워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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