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들의 미덕이라면 이를테면 “나의 일은 진실한가”라는 발본적 자기 의심일 터. 시치미 뚝 떼지 못하는 이 자의식 과잉이 때로 자기 파괴적이기도 하지만 저항과 창조의 원동력이었음을 어찌 부인할까. 서울시립미술관 주최로 본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이미지의 틈’전은 젊은 미술가들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 참여 작가 22명은 시립미술관이 200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개관, 2008년 신진 작가 지원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지원해 온 200여명의 신진 작가 중 이미지의 문제에 주목해 온 이들로 현대사회 이미지의 위상을 살피는 작품 50여점을 선보인다.
이미지라면 음악가에겐 음표, 소설가에겐 문자에 해당하는 미술가의 밑감. 이들은 이 원초적 대상에 물음표를 던진다. 예컨대 김기훈씨의 조각품 ‘스너비’는 두 물체 사이의 빈 공간을 비너스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데 두 물체가 회전하면 그 이미지는 다시 무의미한 공간으로 변한다. 이미지는 일종의 허공임을 넌지시 암시한다. 강영민씨의 설치 작품 ‘힐레로바의 얼굴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얼굴 이미지를 모아 원통으로 만든 뒤 이 원통들을 다시 하나의 얼굴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 얼핏 하나로 통일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무수한 파편적 이미지들의 군집이다. 이창훈씨의 설치작품‘Stone’은 똑 같은 모양과 배열을 갖춘 돌 무더기를 두 부류 전시하는데 하나는 자연석이지만 하나는 종이로 만든 것이다. 눈으로는 진짜 돌과 종이 돌을 구별하기 힘들다.
전시 1부인 ‘이상한 거울_이미지와 눈의 틈’전은 이처럼 이미지가 일종의 시각적 환영(幻影)임을 드러낸다. 평면의 이미지가 원근법 등으로 그럴싸하게 3차원적 현실을 재현할지라도 시각적 착각이라는 얘기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시각에 대한 오래된 통념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미지를 둘러싼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무람없이 노니는 작가들의 상상력은 재치 있으면서도 유쾌하다.
이미지가 불안정한 부표라면 그 속엔 시스템적 통제의 여지도 다분할 수밖에 없다. 2부 ‘이미지의 배반_이미지와 현실의 틈’전은 현대사회의 범람하는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살피는 작품들이 모였다. 금혜원씨의 ‘blue afternoon’은 재개발 아파트 지역을 마치 푸른색의 바다 물결처럼 비틀고, 이재이씨의 영상작품 ‘백조4’는 작가가 직접 목욕탕 벽화의 백조 그림을 낯짝 두껍게 재현한다. 이미지가 계급적 기호, 혹은 속물적 욕망을 대변하고 진실을 박제화하거나 은폐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특히 보도 매체의 이미지 역시 특정한 관점을 반영하는 사회적 코드로서 도마 위에 오른다.
전시실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눈길을 잡는 것은 실제 신진 작가들과의 인터뷰와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한 설치 작품‘인터뷰 프로젝트’와 ‘리서치 프로젝트’다. “다시 그릴 수 있을까” “존재감이 없어질까 두렵다” 등 젊은 작가들의 고뇌가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큐레이터 김영임씨는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살피면서 요즘 젊은 작가들의 고민과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관람표는 무료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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