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허니컷 지음ㆍ김승진 옮김
이후 발행ㆍ392쪽ㆍ1만8,000원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루 8시간 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시리얼로 유명한 미국 켈로그사는 1930년대에 6시간 노동제를 실시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85년까지도 일부 부서에서 이 제도를 유지했다.
미국 아이오아대 여가학과 교수인 벤저민 허니컷이 쓴 <8시간 vs 6시간>은 노동의 역사에서 희유한 켈로그사의 6시간 노동제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졌는지를 당시의 기록 및 관련 인물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대공황 초입이던 30년 12월 켈로그사의 소유주인 윌 켈로그는 공장 근무를 기존의 8시간 3교대제에서 6시간 4교대제로 전환했다. 6시간 노동제는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줄 수 있어 저명한 기업가와 노조 지도자들 사이에서 불황 타개책으로 지지를 받았다.
켈로그사가 자리잡고 있던 배틀크리크는 공공의 건강과 신체의 건강에 관심을 갖고 있는 개신교 일파인 제7안식일재림교의 중심지였다. 이 교파의 영향을 받은 켈로그는 자신은 "노는 법을 몰랐다"고 할 정도로 평생 일에 파묻혀 있었지만 여가를 확장하고 자유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켈로그사 노동자와의 인터뷰 기록 등을 보면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좋은 일이라고 여겼으며, 이를 임금 인상과 맞먹는 혜택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켈로그가 물러나고 5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새 경영진은 8시간 노동제를 종용했고, 노동자들은 차례로 6시간 노동제를 포기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6시간 노동제 하에서 줄어든 노동시간 2시간으로 일이 사회문화적 중요성을 잃었고, 기존 노동 중심 문화에서 확립됐던 남성 중심의 지배가 흔들렸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리얼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미국 사회에 일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켈로그사의 경영자들과 장기근속 남성 노동자들이 연합해 일의 중요성을 선전하고 여가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렸으며, 6시간 노동제를 여성적인 것으로 규정해 버렸다. 실제로 6시간 노동제를 끝까지 고수한 이들은 직장보다 가족과 지역사회 활동에서 의미와 만족을 추구한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라디오 TV 등을 통해 확산된 대중문화가 2시간의 추가 시간 동안 이뤄졌던 지역사회의 여가문화를 대체한 것도 일과 여가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미국 사회에서 노동시간의 점진적 단축은 사회적 담론에서 거의 사라졌고, 노동이 삶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관념이 확산됐다. 켈로그사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자 경영진은 공장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8시간 노동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배틀크리크에서 철수하겠다고 했고 결국 6시간 노동제는 85년 2월 사라지고 말았다. 노동시간은 단순히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결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문화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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