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이 어눌하고 걸을 때 비틀거린다. 판단력이 약해지고 기억이 가물거리며 졸음이 밀려온다. 남이 보거나 본인이 느끼기에 술 취한 상태와 비슷하다. 체온이 35℃ 이하로 떨어지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뇌와 심장 등 장기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33℃가 되면 환각 현상이 시작되고, 32℃ 아래로 가면 스스로 추위를 느끼지 못하며 옆에서 보아도 오한(惡寒)증상조차 없다. 30℃면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고, 29℃에 이르면 흔히 회생 여부를 가늠하는 동공 확대가 시작된다. '몸이 싸늘하게 식었다'고 표현하는 시신의 체온은 27℃ 이하이다.
■ 체온이 조금 떨어지는 게 이렇게도 무서운데, 35℃ 이하로 떨어진 상태를 저체온증(hypothermia)이라 한다. 상온에서 건강인의 체온은 신체부위마다 다르다. 귓밥-코끝-몸통피부-겨드랑이-구강-위-결장(대장의 일부) 순으로 온도가 높아지는데 폐 심장과 가장 가까운 겨드랑이의 온도를 평균체온으로 여긴다. 한겨울에 귀마개와 마스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추워도 체온은 그리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공기의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이다. 물과 습기라면 상황이 다르다. 차가운 물(21℃ 이하)이 빼앗는 열량은 공기의 30배 이상이라고 한다.
■ 흔히 '얼어 죽었다'고 말하는 동사(凍死)는 거의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이다. 시베리아나 히말라야 정상처럼 극단적으로 춥지 않은데도 동사 사고는 많다. 많은 경우 수분과 관계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폭설이 왔을 때 갑자기 동사자가 많고, 심지어 열대지방 폭우 때에도 가끔 사고가 발생한다. 장시간 바다에 표류하면 익사보다 동사에 더 유의해야 한다. 얼마 전 서울에서 술 취해 귀가하던 40대 여성이 아파트 주차장 쌓인 눈 옆에서 동사한 경우도 그렇고, 한강에서 119 구조용 보트가 뒤집혀 구조요원이 저체온증으로 숨진 것도 그렇다.
■ 우리 몸의 면역력은 체온이 1℃ 떨어지면 30% 감소하고, 거꾸로 1℃ 올리면 5~6배 증가해 보약을 지어먹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암세포가 가장 활동하기 좋은 온도가 저체온증의 기준인 35℃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인 듯하다. (자궁)암세포가 정상세포와는 달리 39.6℃가 되자 스스로 소멸해 버렸다는 일본 유력 연구소의 실험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물론 40℃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는 열사병의 문제는 다른 얘기다). 동장군이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체온이 1℃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1℃라도 높일 수 있는 갖가지 지혜를 궁리해 보자.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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