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가 조금 안된 시각. 어둠이 아직 남아있는 바로 그때, 초등학생 10여명과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어른 2, 3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지금부터 4, 5년 전쯤 어느 토요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입구를 지나다가 인적 없는 그 시각에 어린이와 어른이 섞인 일행을 보면서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은 그들을 그냥 지나쳤는데 그 뒤 토요일 새벽 산에 갈 때마다 일행을 볼 수 있었다. 한번은 북한산 비봉을 오른 뒤 향로봉을 거쳐 하산하던 도중 그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땀을 뻘뻘 흘렸고 얼굴도 발개져 있었다. 공부와 컴퓨터와 핸드폰에 빠져 있는 도시 아이들이 대체로 산에 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예쁘게 보였다. "너희들, 어디에서 왔어?" "같은 학교 학생들인데요." "어느 학교?" "상명…." "아침에 일어나는 것 힘들지 않았어? 산에 오니까 좋아?" "힘들지 않아요. 좋아요."
녀석들은 북한산 가까이에 있는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사연을 좀 더 알아보았더니 교장 선생님의 인솔 하에 오래 전부터 토요일이나 일요일 새벽에 북한산을 오른다는 것이었다.
4명으로 시작한 등산, 지금은 100명 넘어
"아이들이 나약해 보여 자연 속에서 체력을 기르게 하자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안진언(61) 교장은 어느새 29년째에 접어든 주말산행의 시작을 그렇게 회상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로서는 처음 만난 서울 아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덩치는 커도 체력이 떨어지고 의지력도 약한 것 같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과보호였고요.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부모가 다 알아서 해주니 아이들이 약해질 수 밖에요."
학교가 자리한 서울 종로는 그때만 해도 정치 일번지로 부르던 곳이고 그래서 종로의 학교는 장차 정치 지도자를 낼 수 있는, 계란의 노른자위와 같아야 한다고 믿었던 그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단단하게 키우고 싶었다.
83년 봄 꽃이 아름답게 핀 어느 일요일 그는 산에 놀러 가자며 반 아이들을 불러냈다. 고작 4명이 모였는데 구기동 이북5도청을 거쳐 금선사라는 절을 지난 뒤 큰 바위가 있는 곳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니 2시간 정도 걸렸다. 아이들이 좋아하자 다음주도, 그 다음주도 일요일에 아이들을 불러 산에 올랐다. 한동안 그렇게 했더니 옆 반 아이들도 가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여 85년부터는 그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갔으며 2005년 교장에 부임한 뒤로는 대상을 전교생으로 확대했다. 한 학년 2개 학급의 작은 학교로 전교생이 380명 정도 되는데 요즘은 학부모와 선생님을 포함해 100명 정도가 올라간다.
토요 휴무일에는 토요일에, 수업이 있으면 일요일에 산에 오르는데 출발시각은 3~10월이 오전 6시, 11~2월은 오전 7시다. 물론 요즘과 같은 방학에는 가지 않는다. 코스도 일정해서 구기동에서 탕춘대 능선을 거쳐 향로봉과 비봉 중간 지점에서 약수터로 돌아 내려 금선사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끔 비봉 혹은 대남문까지 거리를 늘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체력과 독립심을 길러주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산행이지만 어디까지나 가욋일이기 때문에 안진언 교장이 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는, 농촌 출신의 중년이 누구나 그랬듯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는 마을 뒤 야산에 거의 매일 올라 웅변연습을 하고 줄넘기도 했다. 고교 때는 전교생이 산을 에워싸고 토끼몰이를 했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산과 가까워졌던 그는 고향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1971년 여름 방학에 집채만한 배낭을 메고 친구 두 명과 지리산을 오르면서 산행다운 산행을 처음 했다. 추억과 느낌이 많은 등산이었다. 경남 산청군 중산리에서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에 심한 설사를 했다. 설사를 만나면 수분 보충이 필요하지만 물이 거의 없어서 하산 등산객들로부터 얻어 마시며 올랐는데 그때 산에서는 사람들이 잘 베푼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상에서 웅장하면서도 무거운 기운에 감동한 그는 그 뒤 시간 날 때마다 산을 찾았는데 높든, 낮든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해졌다.
이 학교는 주말산행 말고도, 여름방학 때 아이들과 국토순례를 떠날 때 산행을 포함시킨다. 강원지역으로 갈 때는 오대산과 태백산을, 영남권을 순례할 때는 소백산 주왕산 등을, 호남권을 갈 때는 지리산 노고단과 월출산 등을 올라간다. 그들 산에 오르려면 하루 9, 10시간은 고생해야 하는데 안진언 교장은 "아이들은 힘들게 올라간 산을 더 잘 기억하더라"고 말한다.
배려하는 마음 커지고 상상력 풍부해져
초창기에는 산에서 하는 것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진달래, 생강나무를 먹어보게 하고 버들피리를 함께 만들어 불었다. 나무 이름을 외게 하고 시를 낭독했으며 고운말을 쓰라고 주의도 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산이 가장 좋은 선생님인데 이럴 필요가 없겠다 싶어 그런 것을 다 그만 두었다. 다만 북악산_인왕산_남산_낙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이고 그 4산을 성곽으로 잇고 거기에 4대문을 두었다는 둥, 산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도심의 지리와 역사에 대해선 간단히 설명하는데 이 정도는 아이들도 지루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장 선생님의 눈에는 아이들이 산에서 저절로 많은 것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땀 흘리고 높은 곳 오르니 몸이 건강해지고 체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 기운 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고학년 형이 저학년 동생을 끌어주고 물과 간식을 나눠 먹으니 배려하는 마음도 커지는 것 같다.
게다가 아이들은 산에서 더 분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한번은 그가 "산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했더니 한 아이가 "그럼 독버섯도 그렇느냐"고 되물었다. 선생님이 "독버섯이 사람에게는 해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생물에게도 과연 해롭겠느냐"며 "물을 많이 넣어 삶거나 하면 사람에게도 해롭다고만 할 수 없지 않을까"하고 여운을 주었더니 그 아이는 "그럼 제가 독버섯을 연구해 노벨상 한번 타보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해온 산행이니만큼 추억도 많다. 그 중 2004년 7월 폭우가 쏟아진 그날의 산행은 특히 잊을 수 없다. 비가 많이 내리니 누가 나와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이는 장소로 나갔더니 딱 한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빗속에 왜 왔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약속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냥 돌아가기 뭐해 둘이서 승가사까지 올라갔다. 길이 미끄럽고 계곡 물도 불어나 있었지만 제자와 둘이서 한 빗속 산행은 지금 생각해도 좋은 일이다. 녀석은 원래 고지식했다. 한번은 청소를 시킨 뒤 깜빡 잊고 잠시 출장을 갔다 돌아왔더니, 선생님으로부터 집에 가라는 소리 듣지 못했다며 늦도록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현재 고3으로 올해 대학에 진학하는 그 아이에게 얼마 전 '요즘 보기 드문 한결 같은 아이'라는 제목으로 대학 입학 추천서를 써주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아슬아슬한 나이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사고가 없었다. 딱 한번 비봉을 올랐다가 승가사 쪽으로 내려오던 길에 한 아이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돌부리에 이마를 찧은 적이 있다.
부상은 없었지만 개구쟁이 한 녀석 때문에 속을 썩이기는 했다. 그 아이는 "나는 개척자"라고 떠들면서 꼭 길 아닌 곳으로만 다녔다. 녀석은 나중에 군에 입대한 뒤 휴가 때 찾아와 "저는 카레이서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어렸을 때 자신을 개척자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생소한 카레이서가 진짜로 될지 모르겠다고 안진언 교장은 생각한다.
선생님에게는 성장한 제자들이 자주 찾아와 주례를 부탁하고 결혼 후 자식을 데려와 보여주기도 한다. 선생님을 찾을 때마다 제자들은 꼭"요즘도 산에 다니느냐"고 묻는다. 안진언 교장은 "옛날에 산에 함께 올랐던 일을 제자들이 잊지 못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주말산행 30년째가 되는 내년이 정년이다. 지금처럼 아이들과 매주 산에 오르는 것도 더 이상 할 수 없을 테고 그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런 그에게 남은 소망 한가지. "다음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과 계속 산을 오르면 좋겠어요. 아이들 심성을 기르고 건강해지는데 산만큼 좋은 곳이 없으니까요."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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