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쏟아진 4대 금융지주사들의 저축은행 인수 추진방침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대형 은행들의 이례적 공동보조는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이 각 지주 회장들을 개별 면담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대책반장'의 첫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해결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효과는 있겠지만, 부실자산을 우량자산(주로 은행) 쪽에 떠안게 '물타기'시키는 옛날식 해법이 되살아났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전가의 보도
경제적 파장이 큰 위기 때마다 은행은 늘 단골 소방수로 호출 당했다. 1980년대 중화학공업과 건설업계 구조조정 당시 주거래은행들은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부실을 '10년 무이자거치, 15년 분할상환' 식으로 떠안았다. 특정은행에 부실이 몰리면, 다른 은행으로 배분하기도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로 이어진 금융부실이 이 때부터 누적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환란 직후 은행 구조조정도 마찬가지. 퇴출위기에 몰린 동화 대동 동남 충청 경기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비교적 여유가 있던 신한 국민 주택 하나 한미은행에 일괄적으로 인수(P&A)시켰다. 사실 그 때는 그 방법 외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
부실 떠넘기기는 2003년 카드위기 때도 마찬가지. 당국은 카드부실 해결자금을 은행들에게 할당시키면서, 은행 계열 카드사들은 은행으로 합병시켰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 위원장의 유명한 '관치론'도 그가 카드사태 주무국장(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을 맡았던 이 때 나온 말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 금융당국 수장으로 금의환향한 그는 취임 후 첫 작품인 저축은행 부실처리 해법으로, 고전적인 '은행에 떠안기기'방식을 다시 꺼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시스템 리스크 차단인가, 확산인가
현재 저축은행 부실은 이대로 놔둘 경우 금융권 전체에 위협요소가 되리라는 데 이견이 없는 상태. 5일 금융권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지주사 회장들도 일제히 "금융시스템 안정 차원에서 저축은행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역시 "저축은행의 위기가 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되면 안 된다는 점에서 은행들의 인수방침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사실 '시스템 리스크론(論)'은 금융당국이 '부실 떠안기기'방식을 택할 때마다 불가피성을 강조하기 위해 내건 논리. 부실을 그냥 둘 경우 해당권역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반이 위험에 노출되는 만큼, 은행이든 누구든 시스템 참여자라면 누구라도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제는 은행 이용하기 관행에서 그만 벗어날 때가 됐다"는 지적도 많다. 당장은 쉽고 편해 보이지만 이런 식의 해결이 만성화될 경우, 금융 시스템 전체에 도덕적 해이 같은 암세포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부실이 과연 시스템 리스크인지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제1 교훈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공유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매번 은행들이 위험공유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부실 저축은행을 대형 은행에 안기는 것은 안 그래도 시스템적 영향이 큰 곳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단계별 시정조치와 부실기관 지정 후 처리 등이 모두 법에 규정돼 있는데도 각종 잡음을 우려해 당장 쉬운 길을 택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금융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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