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은현리 청솔당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주방도 화장실도 빙점하의 세상이다. 소한 추위에 수도관 어디가 꽁꽁 얼어붙어 버린 모양이다. 물이 얼었다면 또 녹을 것이다.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리며 될 일이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차가운 물보다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언다고.
그건 추위에도 내성을 가진 것은 강하다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은현리에서 모두 산(山)물을 받아먹고 산다. 수도가 아니라 산수도인 것이다. 산물은 또 살아있는(生) 물이다. 모두 추위에 익숙한 은현리 물이니 곧 풀릴 것이다. 살아있는 물들이니 살려고 열심히 제 몸의 얼음을 녹이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집안의 물보다 마당의 수돗물이 얼지 않았다. 그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수도꼭지에서 똑, 똑 떨어지는 물은 얼지 않는다. 그 밑에 받쳐둔 물동이의 물도 얼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이 만드는 파장이 있어 물동이가 얼지 않는다.
그러나 물동이가 넘쳐서 밖으로 흘러간 물은 이내 동장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수돗가가 온통 두툼한 얼음으로 얼어붙었는데 정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은 얼지 않고 살아있다. 논리는 간단하다. 움직이는 것은 얼지 않는다! 아무리 추워도 움직이는 이상 얼지 않는다. 저수지가 얼고 큰물은 다 어는데 그 작은 물방울 하나가 얼지 않고 살아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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