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악연이다. 둘 사이에 직접적인 인간관계는 없다. 세계시장을 정복하겠다고 큰 소리치면서 줄기차게 영화를 만들고 있는 심형래와 좌파 독설 가가 만날 일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심형래의 말에 따르면 그는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진중권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심형래가 그저'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언으로 '과거'에 만족하며 지냈다면 그에게 시비 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심형래는 2007년, 그것도 진중권의 혀가 안하무인으로 한창 독기를 뿜어댈 때에 세상 떠들썩하게 를 만들어 내놓았다.
■ 독설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전략'을 자랑하는 진중권이 그 먹이를 놓칠 리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극론까지 동원해 를 쓰레기 취급하면서 송곳니로 심형래의 목덜미를 꽉 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네티즌들을 '심빠'로 단정하고, 공영방송에서 그들 때문에"꼭지가 돈다"는 상스런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는'디워 논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그런 그가 를 그냥 지나칠 리는 없다. "난 한 번 불량품을 판 가게에는 다시 들르지 않는 버릇이 있다"는 한마디로 깔아뭉개 버렸다.
■ 그는 늘 이런 식이다. 상대를 비난하는 언어는 표독스럽고, 천박하고, 독선적이며, 잔인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이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풍자에는 유머는 없고, 모욕만이 있다. 그에게 걸려든 상대는 '불량품''허접한 음식''사이비 종교집단'아니면 역겨운 동물로 변하고 만다. 그의 언어습관은 설화(舌禍)로 곤욕을 치르고도, 세상이 달라져도 바뀌지 않았다. 나 에 대한 그의 비판이 전혀 엉뚱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보다 반발이 훨씬 거센 이유는 그의 감정적, 모멸적 언어 때문이다.
■ 재미있는 것은 그의 독설이 심형래 영화의 화제와 흥행을 도와준다는 것이다.'공격의 역설'이다. 가 그랬고, 도 그렇다. 그가 말한 심빠들은 반발심에서,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에서 극장을 더 찾는다. 가 1주일 만에 150만 명을 돌파하고,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면서도 예매율 1위를 달리는 데는 진중권의 역할도 적지 않다."알고 보니 심형래와 진중권은 같은 편"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절묘한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두 사람은 각각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만으로도 우습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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