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통령 주치의는 의료계 안팎에서 더러'어의(御醫)'로 불린다. 국가원수의 건강을 돌보는 책임을 맡고 있으니 그리 추켜세울 만도 하다. 그러나 의전상 차관급 예우를 받을 뿐, 무보수 명예직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 이래 대개 서울대 의대 교수가 맡는 대통령 주치의는 청와대에 상주하지 않지만 늘 30분 이내 거리에 머문다고 한다. 휴가나 외국 방문 때도 항상 수행한다. 그 권위와 상징성 때문에 정권 교체 때면 유명 의대들이 경합하기도 한다. 주치의가 추천하는 진료 분야별 자문위원 자리도 그런 모양이다.
■ 미국 대통령 주치의도 원래 민간인이었다. 1차 대전 중 해군 장성급 군의관이 주치의를 맡았다가 1945년부터 거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릴 정도로 늘 곁을 지켜야 하는 데다, 전쟁 등 위기상황에서는 전용기에 함께 타고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핵과 생화학 공격에 대응한 의료 방호를 지휘하는 임무도 포함된다. 클린턴 시절에는 해군 소장, 부시 때는 공군 준장, 오바마에 와서는 다시 해군 대령이 주치의로 백악관 군사처 소속 의료팀을 이끈다. 백악관 의료팀은 육해공군 군의관 6명과 응급전문의사 등 20여 명에 이른다.
■ 클린턴의 여성 주치의 엘레아노 마리아노 해군 소장은 대통령 주치의는'참호 의사(trench doctor)'라고 비유했다.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보는 일반의사(desk doctor)들과 달리, 국내외 어디든 대통령의 위급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가 전쟁터의 야전 군의관과 같다는 말이다. 의료팀은 대통령이 워싱턴을 벗어날 때마다 미리 경호실과 협조해 응급수술 병원과 후송 루트를 확보하는 등 비상작전 계획을 짠다. 또 주치의는 경호실장과 '핵 가방'을 든 무관과 함께 대통령을 근접 수행한다. 그 긴장과 스트레스가 참호 속 전투대기와 다름없다고 토로한 것이다.
■ 우리도 현역 군의관인 청와대 의무실장이 그림자 역할을 한다. 24시간 대통령 곁을 지키는 의무실 요원은 군인들이다. 여기에 이 정부 들어 없앤 한방 주치의를 3년 만에 다시 위촉한다니, 70대에 접어든 대통령의 건강을 돌보는 데 도움될 것이다. 한의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상징성이 크다는 한의학계의 의견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건의를 대통령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 좋은 일이다. 다만 나라 밖 홍보에 앞서, 한방과 양방 주치의 가운데 누가 진짜 어의 또는 태의(太醫)인지 다투는 식의 분란은 없었으면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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