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 재판은 초반부터 일진일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던 한만호(50ㆍ수감 중) 전 한신건영 대표가 2차 공판에서 진술을 180도 뒤집은 데 이어, 3차 공판에서는 검찰과 한 전 총리 측 모두 상대 주장의 허점을 파고들 카드를 꺼내면서 향후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4일 3차 공판에서 검찰은 한씨의 진술 번복에 따른 타격을 만회하려는 듯 한씨의 교도소 접견 녹취록을 전격 공개하는 등 공세를 펼쳤다. 이에 대한 한 전 총리 측의 반격이 다시 나온 것은 5일 새벽 2시쯤이었다.
변호인들이 공개한 한씨 휴대폰의 전화번호 입력 내역에 따르면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때는 2007년 8월21일. 이보다 한 달 전인 7월20일 수백 개의 전화번호가 동시에 입력됐는데, 변호인 측은 "휴대폰을 바꾸면서 기존에 저장된 번호들을 일괄적으로 옮긴 것 같은데 이때 한 전 총리의 번호는 없다. 기기 변경 후에 저장한 게 아니냐"고 물었고 한씨는 "그런 것 같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수사기록상 한씨는 "2007년 3월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를 알게 됐고 돈을 준 시기에 휴대폰으로 자주 통화했다"고 진술했고, 한 전 총리 공소장에는 돈 전달 시점이 2007년 3월 말~4월 초, 4월 말~5월 초, 8월 말~9월 초 등으로 돼 있다. 따라서 앞의 두 차례의 경우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도 저장해 놓지 않은 채 서로 통화하며 돈을 주고 받았다는 것이 돼 사리에 맞지 않고, 때문에 한씨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의 경우, 한 전 총리 측과 한씨는 "측근 김모씨에게 빌려준 것"이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2007년 초에 두 사람이 서로 통화해 만난 사실이 있고, 휴대폰을 하나씩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전화번호 입력 시기를 두고 다툴 실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2007년 3월에 한 전 총리 전화번호를 처음 알게 됐고, 돈 전달 때에도 그 번호를 사용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 공개를 놓고도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공판에서 한 전 총리와 모 정치인,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사이의 자금 거래 경위를 캐물었다. 검찰 관계자는 "한씨한테 전세금 1억원을 빌렸다는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이 모두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전 총리 측 조광희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를 마친 후 재판에 임해야 하는데 거꾸로 재판에서 수사를 하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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