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에딘버러페스티벌에 극단 목화식으로 바꾼 셰익스피어의‘템페스트’로 참가했어요. 간 김에 ‘내 사랑 DMZ’도 했고, 평 좋았죠.”
세계 최대 공연 시장에 한국 팀 최초로 공식 초청돼 참가했다는 사실은 손색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극단 목화 대표인 극작ㆍ연출가 오태석(71)씨에게는 정작 제 나라에서는 시국 등에 치여 눈밖에 난 ‘내 사랑 DMZ’가 걷고 있는 행로가 뒤처지는 자식 보듯 안쓰럽다. 역설적 평화의 공간을 노루 들개 거미 등 온갖 미물과 6ㆍ25전쟁의 원혼들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장소로 그린 작품이 왜 이리 박복한가 싶다.
“개뼈다귀 같은 이데올로기에 수혈받아 갈수록 튼튼해지는DMZ”를 무대화한 값을 그는 톡톡히 치렀다. 극과 극이었다. 국내서는 악화일로의 남북 정세에 치여 철저한 무관심을, 나라 밖에서는 잊혀진 역사를 연극적 재치로 끌어낸 무대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1967년 신문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고 이후 44년을 꼬박 극작과 연출만 해 왔지만 미학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 논리에 휘말려 이토록 극단의 평가를 받기도 처음이다.
“DMZ랜드, 자연 관광, 생태계 촬영, 러브호텔, 민물장어센타 (하략)” 등 DMZ 특수를 노리는 상혼이 가져올 재앙을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 보이자는 의도였다. 2002년 창작된 이 작품 최대의 흠결이라면 천안함 사태 이후 들이닥칠 남북 관계의 급랭를 예견하지 못 했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 8년 동안 국내에서는 단 45차례 공연의 기회만 가졌을 뿐이다. 자신의 작품에 관한 한 최악이었다. 아예 반응이 없었다. “연극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제쳐 두고, 시사 문제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그는 읽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2006년 초연된 뒤 천안함 사태가 빚은 험악한 분위기에 얹혀 2010년 국립극장 무대에까지 섰던 사실을 떠올린다면 노장의 표현은 차라리 직수굿한 셈이다. 그렇다면 같은 무대에 쏟아지는 해외에서의 환성은 뭐란 말인가.
초연 직후인 2004년 일본 도쿄(東京) 앙고라소극장으로부터 초청받아 열흘간 펼쳤던 무대는 ‘평론가 선정 그해 최고의 공연’에 올랐다. “친환경이란 관점에서 DMZ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점을 이룩했다. DMZ를 가상의 공간으로만 생각해 온 우리에게 4㎞×155마일의 땅은 또 다른 베를린 장벽임을 일깨웠다”는 평이었다. 일본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한국적 샤머니즘과 연극적 장치 등 형식과 내용을 두고 급증하는 문의에 이튿날 공연부터 극단 목화의 일본인 기획자는 DMZ 사진을 보여 주며 설명, 공감을 확산시켰다. 현재 일본의 5개 극장으로부터 받아 둔 공연 제의가 당시 공연의 성과다.
긴 공백을 떨치고 지난해 6월 나흘간 호주 브리즈번 사우스뱅크기술대 강당에서 가졌던 무대. 6ㆍ25전쟁 참전 호주 용사들로 북적댔다. 급랭하는 국내 상황의 돌파구로 극단 측이 호주의 한인 교수를 통해 한인회에 제의, 호주재향군인회까지 연결된 것이다.
6ㆍ25전쟁 당시 북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호주 쌕쌕이’의 주인공들 아니던가. 8순이 된 그들의 손에는 대부분 한국에서 찍은 당시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이런 작품으로 한국을 떠올릴 줄은 몰랐다”고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온 식구들은 관극 후 “할아버지가 20대를 어디서, 왜 보냈는지 알겠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9순의 당시 참전 장교가 중환자실에서 공연 소식을 듣고 “꼭 봐야 한다”고 고집, 공연장까지 이송을 논의하던 중 불귀의 객이 되고 만 일은 가장 안타까웠던 대목이다. 결국 장례 미사를 치른 친척들이 와서 대신 구경해야 했다.
직후 이 작품은 런던의 킹스턴로즈시어터에서 목화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공연됐다. 막 내린 뒤 오씨를 찾아와 인사를 하는 등 사뭇 감회에 젖은 영국 관객들 역시 감사를 표했다. “연극을 고급 문화로 존중하는 그들의 자세가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유엔군의 환생 대목에서 유니온잭 흔들며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연기하던 영국 배우는 눈시울까지 붉혔다. “할아버지의 영혼을 느꼈다, 이런 전쟁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의 무대를 보고 우는 서양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은 오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음 해외 나간다면 오는 길에 독일 터키 그리스 등 참전국에 들러 이 작품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바람은, 때로 밖에서 불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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