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결국 채권단의 손을 들어줬다. 채권단의 손을 들어준 것은 결국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준 것이기도 하다.
법원은 4일 현대그룹이 제기한 현대건설 매각 양해각서(MOU)효력 유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권단이 잘한 것은 없지만, 인수자금의 투명성 입증을 위해 그토록 채권단이 자료를 내라고 요구했음에도 현대그룹이 끝내 제출하지 않은 것은 성실의무를 다하지 못한 처사라는 취지다.
채권단은 법원의 판단 결과가 나온 만큼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 그룹과 매각협상에 돌입해 현대건설 매각을 조기에 종결한다는 방침. 이로써 현대차는 현대건설 인수를 99% 확정 지었다. 물론 현대그룹이 본안 소송 등 대대적인 법적 공세에 나설 것이 확실시 되지만, 이미 대세는 현대차로 넘어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매각협상 속도낸다
채권단은 이미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한 상태. 이날 법원의 가처분 신청기각으로 법적 장애물까지 사라진 만큼 현대차그룹과 매각협상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예비협상대상자였던 현대차는 곧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승계, 현대건설 인수수순을 밟게 된다.
채권단은 이르면 5일 현대차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을 주주협의회에 상정, 7일까지 각 기관의 의견을 취합할 계획이다. 안건은 채권단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통과되는데 현재 주주의결 분포상 가결될 가능성이 거의 100%다.
채권단이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자대상자로 선정하면 MOU체결→정밀 실사→본계약 체결의 과정을 밟게 된다. 다만 최종적인 매각가격은 실사 결과에 따라 당초 현대차가 제시한 5조1,000억원과는 다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차와 MOU를 체결하고 실사기간을 거쳐 본 계약을 체결하기까지는 최소 5~7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주식 인수대금이 납입되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은 3월말에는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남은 걸림돌
현대그룹은 이날 가처분 기각결정에도 불구하고, MOU해지 결정 자체가 위법이라며 법원에 본안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미 낸 채권단과 현대차간의 매각 협상을 금지해야 한다는 청구소송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현대그룹으로선 앞으로 채권단과 현대차그룹간에 진행될 모든 절차에 대해 소송공세로 나설 공산이 커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하지만 채권단은 매각작업과 소송과는 별개라는 입장. 채권단 관계자는 “MOU를 해지하고 주식매매체결까지 하지 않기로 한 이상 현대그룹과 딜은 완전히 종료됐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본안소송에서 MOU해지가 위법으로 나오더라도 채권단이 본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면서 “현재로서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가져갈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 남는 것은 ▦채권단이 중재안으로 내놓았던 현대상선 경영권보장과 ▦2,755억원의 이행보증금 반환문제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향후 소송을 하지 않을 경우 이행보증금을 모두 돌려주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0%)을 제3자에게 매각해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방안을 중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특히 현대상선 지분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현정은 현대그룹회장과 범현대가 사이에서 ‘캐스팅보트’가 될 수도 있는 것인 만큼,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채권단 일원인 유재한 정책금융공사사장은 “현재로선 (중재안이) 유효 무효를 말하기 어렵다”면서 “향후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봐가며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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