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김기택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한 시간이 넘도록
내 몸에서 고기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불에 익은 피, 연기가 된 살이
내 땀구멍마다 주름과 지문마다 가득 차 있다.
배고플 때 허겁지겁 먹었던
고소한 향은 사라지고
도살 직전의 독한 노린내만 남아
배부른 내 콧구멍을 솜뭉치처럼 틀어막고 있다.
고기냄새를 성인(聖人)의 후광처럼 쓰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린다.
지하철 안,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모습의 허공을 덮고 있는 고기냄새의 거푸집이
아직도 손잡이를 잡은 채
계단으로 빠져나가는 나를 차창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상쾌한 바람이 한꺼번에 고기냄새를 날려보낸다.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쉬는 사이
고기냄새는 잠깐 파리떼처럼 날아올랐다가
바로 끈적끈적한 발을 내 몸에 찰싹 붙인다.
제 몸을 지글지글 지진 손을
제 몸을 짓이긴 이빨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가
제 시신이 묻혀 있는 내 몸속으로
끈질기게 스며들고 있다.
● 외투를 벗어놓고 먹을 걸 그랬나. 아하, 그래서 신세대들은 냄새나지 않는 퓨전 삼겹살을 먹는구나. 늘 얕은 후회로 지워버리던 삼겹살 냄새. 그 냄새를 끈질기고 세밀하게 관찰해 이리 멋진 시를 써놓았네요.
삼겹살이 통과하고 있을 내장 같은 지하철. 고기 냄새의 거푸집이 손잡이를 잡고 차창으로 나를 내다보고 있다는 극사실적 묘사가 압권이네요. 고기 냄새는 끈덕지게 고기를 향해 달라붙고 고기를 취한 나는 냄새를 끊어버리고 싶고. 어쩌지요, 연이란 대체 무엇이죠? 생명체를 먹어 생명을 연명하는, 생명체의 비애를 느낀 나는 고기와 고기 냄새 속에 갇혀 또 삼겹이 되네요.
진리와 지혜를 상징한다는 광배를 지닌 부처가 아닌, 삼겹살 냄새 후광 뒤집어쓴 너무나 서민적인 시(詩)부처 만나, ‘고소한 향’과 ‘노린내’의 경계는 무엇인가란 화두 하나 얻었네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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