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청소년들이 즐겨 듣던 라디오 FM 방송에서는 우리 대중가요가 나오는 일이 오히려 드물었다.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는 팝뮤직이었다. 비지스, 이글스, 아바, 딥 퍼플, 유라이어 힙, 에릭 클렙튼 등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다. 어쩌다가 신중현 밴드 등 몇 안되는 국내 그룹사운드의 노래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정도였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도한 문화종속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방송에 왜 우리 가요는 거의 없는 걸까. 우리 가요의 해외진출은 불가능할까. 박원웅 이종환 등 FM을 지배했던 당대의 DJ들 역시 팝뮤직 외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젊은 취향의 노래가 별로 없었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홍콩 무술영화나 미국의 영화들이 극장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랬던 FM 방송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가 70년대 말이었다. 맹아는 1977년 출범한 MBC 대학가요제였고, 이후 학력제한을 없앤 MBC강변가요제도 한몫을 했다. 보아를 키운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씨도 당시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나 어떡해'로 1위를 차지했던 서울 농대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 의 2기 보컬이다. 물론 그는 대학가요제가 출범하기 이전세대이고 우승은 후배들이 했다. 그는 이후 SM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보아를 일본에 진출시켜 사실상 첫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아무튼 대학가요제가 태동하면서 변화가 시작됐고, 10년여가 지난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출현할 즈음, 국내 대중가요가 FM 방송에서 팝뮤직을 누르고 확실히 득세하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최근 들어 우리 대중가요 스타들은 중국과 일본은 물론, 태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을 앞세운 우리 드라마들도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있다.
이는 분명 경제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소녀시대 등 걸 그룹 들이'성스런' 율동으로 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꼭 지적해야 할 문제지만 그들이 오리엔트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국내의 한 경제연구소는 배용준 1인의 경제적 효과가 한국과 일본을 합쳐서 3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내놨다."한류는 한민족 르네상스로 아시아 르네상스이며 전 세계인이 참가하는 동아시아, 태평양 신문 명 창조를 위한 세계 르네상스"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송병락 교수는 에서 한류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기술도 원천기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노기술, 생명공학 기술, 정보기술(IT) 등의 원천기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 우리 3D TV는 제품의 혁신에 속하지만, 한류열풍은 시장의 혁신으로 보고 있다. 한류도 슘페터가 그토록 강조하는 혁신의 범주라는 것이다.
송교수는 한국의 경제는 이미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 가는 창조와 혁신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우리의 앞선 IT, 한방 의술, 한류 등을 이용하면 국가 브랜드도 올릴 수 있다는 것. 그는 이를 위해 여러 나라의 경제 모델을 섞고 비비면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돌솥 비빔밥 전략'을 구사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토끼해를 맞아 국력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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