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이 열악했던 30여 년 전 군에서 본 업무 외에 부식용 토끼를 키워봐서 안다. 토끼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엄청난 번식력이다. 토끼는 보통 생후 3~4개월이면 벌써 새끼를 낳을 수 있고, 1년에 6번쯤 출산이 가능하다. 한배에 6~8마리를 낳으니까 한번 따져보자. 토끼 한 쌍이 8마리씩 1년에 6번 새끼를 낳으면 그것만해도 48마리다. 첫 새끼가 4개월 뒤에 같은 방식으로 출산하면 4(암수쌍)×8(새끼수)×4(출산회수)=128마리에, 또 다음 다음세대를 따지면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불어난다. 전국 곳곳에 토끼섬이 있는 이유다.
■ 이 때문에 동양에선 토끼가 풍요의 상징이지만 서양에서 토끼 이미지는 훨씬 부정적이다. 대체로 소심하고 겁 많고 별 실속 없이 부산하게 움직임만 바쁜 동물로 여겨진다. 좁은 토끼장 속에 갇혀 끊임없이 생산해대면서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이미지에 가깝다. 존 업다이크의 소설 의 주인공 해리 앵스트롬이 고등학교 때부터 토끼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유도 정확히 이런 것이다. 하지만 삶에 짓눌려 사는 이가 어디 그뿐이랴. 현대사회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 매년 각국의 행복지수를 발표하는 영국 신경제재단이 2006년 행복 1위 국가를 선정하기 전까지 아무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 공화국을 주목하지 않았다. 외적 조건으로 보자면 가장 불행해야 할 나라다. 인구 20만 명에 소득이랄 것도 없는 경제수준에, 서로 적대하기 십상인 온갖 종교들이 혼재해있고, 평균수명도 낮은데다, 무엇보다 100개가 넘는 언어로 서로 의사소통조차 여의치 않은 곳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유는 딱 한가지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문화가 정착돼있기 때문이었다.
■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늘 꼴찌그룹이다. 톱니바퀴처럼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 부와 성공에 대한 강박이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토끼장 속의 불안한 처지와 다르지 않다. 에서 해리는 행복을 좇아 여러 번 일상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가 행복해진다는 결론은 끝내 없다. 일찍이 칸트는 실체 없는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스스로 행복을 누릴 자격을 갖추는 게 먼저라고 했던가. 아마도 존중과 배려, 개방과 공존의식이 그 자격일 터이다. 그렇게 다들 토끼의 삶을 벗어나 올핸 좀더 행복해지시기를.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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