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가 아닌 나눌 수 있는 시 쓸 생각"
박송이(30)씨가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것은 2003년 무렵부터다. 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좇아 한남대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남들과 별다를 바 없는 인생이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에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복학한 해였다. 박씨는 문예창작과에 복수 전공을 신청했고 시인 김완하 이재무, 소설가 김탁환씨 등의 수업을 들으며 창작의 묘미를 깨달아갔다. "주간에는 국문학과, 야간에는 문예창작과 수업을 들었는데 피곤하기는커녕 무척 즐거웠어요. 내가 시를 알아가고 있구나, 갈 길이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자신감은 교내 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부쩍 커졌다.
그러나 등단은 쉽지 않았다. 2005년부터 꾸준히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국문학과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아 2008년 수료했지만 모교의 시간강사 외에는 강의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이 서른에 번듯한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강의 자리가 많은 유능한 강사도 아니고, 방랑자 같은 마음으로 갈팡질팡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시인이 되려는 소망 하나 붙들고 살아가던 그에게 올해 신춘문예 시즌을 앞두고 시가 불현듯 '찾아왔다'.
지난 가을학기 모교에서 강의하며 잠자리를 신세 졌던 후배의 아파트에서 박씨는 베란다 창에 찍힌 새 발자국을 발견했다. '어느 순간에 발자국을 남기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새. 과연 비행한 것일까 추락한 것일까.' 스스로도 낭떠러지에서 비행과 추락의 기로를 걷고 있다는 박씨의 자의식은 새 발자국이 준 단상을 시상으로 확장시켰고, 그렇게 탄생한 시가 당선작이다.
당선작 외에도 '성락원' 등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 4편을 박씨는 예전과 달리 즐겁게 썼다고 한다. "그동안 시를 쓸 때는 내 상처를 남에게 감춘 채로 화려하게 꾸며 쓰려고 했다. 쓸 때도 고통스럽고, 혼자밖에 읽을 수 없는 시를 썼달까. 이번 투고작들을 쓰면서는 시를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도 읽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드디어 시의 뮤즈가 찾아온 것을 한국일보 신춘문예가 제대로 간파한 모양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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