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9,30일 한국일보와 여성가족부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에서 상당수의 참가자들은 기업이 여성 인재 발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독 고위직 여성 재계 인사가 드문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들의 지적은 새로운 자극제가 됐다.
그리고, 이들의 지적이 받아들여지기라도 한 듯 올 연말 기업 임원인사에서 여성 인재들이 약진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8일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 여성 인재들을 대거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박희선, 송영란 삼성전자 부장이 나란히 상무로 승진했고, 김영주 삼성SDS 부장도 상무로 진급했다.
삼성SDI는 김유미 상무가 전무로, 이지원 부장이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증권에서도 이재경 팀장이 상무 보직을 받아 회사 내에서 유일한 여성 임원이 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딸인 이부진 부사장과 이서현 전무가 각각 사장과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까지 감안하면 모두 8명이 삼성 임원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28일 단행된 현대차 인사에서는 백수정 현대캐피탈 이사가 단연 눈에 띄었다. 백 이사는 여성 임원이라는 점 외에 30대에 이사가 됐다는 점, 2007년 경력직 부장으로 입사한 이후 3년 만에 '별'을 달았다는 점 등 다양한 화제를 낳았다. 조양호 한진 회장의 막내딸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팀장도 29일 인사에서 27세의 젊은 나이에 상무보가 됐다. 그는 대한항공의 광고를 총괄 관리하면서 호평을 이끌어냈고 직접 광고에 출연해 번지점프를 하는 등 적극성을 보여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금융권에서도 여성 임원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김덕자 하나은행 용산지역지점장은 29일 인사에서 용산지역본부장으로 승진, 하나은행 최초의 여성임원이 됐다. 김 본부장은 영업점 평가에서 6년 연속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영업능력을 인정받았다. 미래에셋증권은 단 1명이던 여성 임원을 3명으로 늘렸다. 이 회사는 28일 인사에서 지금까지 유일한 여성 임원이었던 김진희 본부장을 이사에서 상무보로 승진 발령했고, 윤자경 브랜드전략실장과 전진희 삼성역지점장을 이사로 새로 선임했다.
재계에서 여성 인재들의 임원 발탁이 늘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 및 경제력을 갖춘 여성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분석하고 관리해야 할 여성 임원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심수옥 삼성전자 전무는 지난달 여성리더십컨퍼런스에서"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기업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필요해졌다"며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비즈니스 경영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조직에서의 유연함, 꼼꼼하고 섬세한 일처리,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등 여성 임원에게 기대할 수 있는 특징들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여성 임원들이 몇 명 늘었다고 해서 여성 직장인들의 '유리천장'이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최근까지 100대기업 직장인 중 여성 중간관리자는 7.1%, 여성 임원은 1.1%에 불과했다.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임원 등극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출산 및 육아 등 문제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 개선, 여성 인력에 대한 일부 남성 CEO들의 고정관념 타파 등 여성 인력 육성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한 여성 임원은 "여성들이 업무 능력 이외의 이유 때문에 평가절하되고 승진 대상에서 누락되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여성임원의 탄생은 불가피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일인 만큼 정부와 기업이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더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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